ADVERTISEMENT

[week& 레저] 다시 열린 하늘 길 대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3면

우리에게 대만은 동지였다. 한국전쟁때는 군대도 보내줬다.

그러다 12년 전 한국이 중국과 수교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외교관계가 단절되고 직항로가 폐쇄됐다.

우리 뇌리에서 중공이 중국으로 바뀌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자유 중국'은 멀어져갔다. 안 보면 멀어진다는

서양속담이 꼭 맞는 경우다. 그러던 차에 '자주 볼 일'이 생겼다.

지난 10월 양국 간 항공협정이 체결되고

이달부터는 구체적인 항공사 노선 배분까지 이뤄졌다.

갑자기 가까워진 대만은 이제 중국이 아니라

대만 자체의 매력으로 한국 관광객에게 손짓하고 있다.

도시와 자연이 극단을 달리며 조화를 이루는 곳,

대만의 속살을 들여다봤다.

*** 화산이 만든 협곡, 절벽을 파낸 도로

대만은 활발한 화산활동의 산물이다. 이를 가장 압축해 보여주는 곳이 대만 동부 화롄(花蓮)현의 타이루거(太魯閣) 대협곡이다. 필리핀 해저판과 유라시아 대륙판이 충돌하면서 중앙산맥이 솟아올랐고, 이 중 대리석 성분의 땅이 쪼개지고 물과 바람에 깎이고 닳아서 좁고 깊은 틈을 냈다. 보통 수백m, 어떤 곳에선 그랜드 캐니언(1620m)보다 높은 1666m의 V자 협곡이 20㎞나 이어진다. 칼로 자른 반듯함이 아닌 손으로 쪼갠 듯한 구불구불한 선, 고개를 젖혀도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 양쪽 절벽, 땅이 서서히 솟으며 침식을 받은 기다란 줄무늬 층 등이 수직감과 수평감을 최대로 상승시킨다. 땅거죽 위에 이런 흔적을 남긴 자연의 힘에 고개가 숙여진다.

대만 사람들은 여기에 한가지 더 놀라운 흔적을 남겼다. 협곡을 따라 중앙산맥을 넘는 동서횡단 고속도로다. 지반이 약해 폭약을 쓰기 힘들고, 지형이 험해 기계를 동원할 수도 없어 망치와 정으로 절벽 가운데를 파낸 'ㄷ'자 길이다. 이 길에 서면 도로가 아니라 난간이 이어지는 회랑 같은 느낌이다. 멀리서 보면 그냥 틈새나 구멍 같다. 도로가 자연 그 자체다. 대리석이 지천이다 보니 화롄은 대리석 문화가 정교하게 발달했다. 가공공장만 500여 곳. 호텔의 바닥은 물론이고 욕조와 탁자.쓰레기통까지 대리석이다. 길거리 보도블록마저 대리석이다. 밟기가 황송할 정도다.

전국에 100여 개 온천이 산재해 있다. 이 가운데는 끓는 물이 땅위로 솟아오르는 용출천도 많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긴장감이 서린 휴화산도 있다. 타이베이에서 지하철로 20여 분 거리에 있는 양밍산(陽明山)이 대표적이다. 산자락까지 연결된 신베이터우역을 나오는 순간부터 썩은 계란 같은 유황 냄새가 코끝에 진하게 풍겨온다. 길을 따라 대중목욕탕 수준의 시설부터 특급호텔까지 온천장이 줄지어 있다. 땅위로 분출된 섭씨 80도의 유황 온천수가 연못(地熱谷)을 만들고 대부분의 작은 온천장은 이 물을 끌어 쓴다. 시가 운영하는 직영 온천은 1500원 수준, 일반 온천은 7000원 정도여서 주말이면 타이베이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중턱 샤오유컹(小油坑)에 이르면 휴식 중인 화산이 내뿜는 증기 기포를 경험할 수도 있다.

*** 역사·문화 유물 82만점에 101층 빌딩까지

타이베이는 문화사적인 보고다. 세계 4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고궁박물관은 본토보다 많은 고대 중국 유물을 간직하고 있다. 마오쩌둥에게 쫓기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장제스가 이 유물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중국 역사의 정통성을 잇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장 유물 82만여 점을 다 보려면 8년이 걸린다는 박물관 규모보다 마오쩌둥이 뻔히 알면서도 문화재 훼손을 두려워해 폭격을 포기했다는 일화가 훨씬 구체적으로 가슴에 와 닿는다.

시가지에는 세계 최고도 한가지 있다. '타이베이 101'이라는 건물이다. 마천루 경쟁이 한창일 무렵 짓기 시작한 이 건물은 현재 세계 최고 높이로 타이베이의 상징이 됐다. 새로 경쟁에 뛰어든 후예에게 최고의 자리를 곧 넘겨주겠지만, 가끔 구름이 걸리는 이 건물은 가장 빠른 속도(시속 60㎞)의 엘리베이터도 갖추고 있다. 불교와 토속신앙이 거부감 없이 융합한 수많은 절은 저녁이면 특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번쩍이는 금박 건물을 휘감은 진한 향 연기는 신비감을 더한다. 특히 최대 불교 사원이면서도 불전 뒤에 삼신할미와 관우까지 수십 가지 토속 신을 모신 전각을 둔 용산사는 대만 사람들의 신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최현철 기자

*** 여행정보

대만여행의 또 다른 재미는 먹거리에 있다. '나는 것은 비행기를 빼고, 네 발 달린 것은 책상 빼고, 헤엄치는 것은 잠수함 빼고 다 요리한다'는 정통 중국요리의 '본점'이 수두룩하다. 본토와 분단 과정에서 쓰촨과 광저우 등의 내로라하는 요리 고수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대만의 명동 시먼팅(西門町)에 자리한 야종미엔센(阿宗麵線)의 곱창국수와 견딜 수 없는 냄새에 코를 감싸 쥐고 먹는 취두부를 맛보지 않는다면 후회하게 된다. 뱀요리로 유명한 화시지에(華西街)를 비롯해 스린.랴오허지에 등 야시장엔 먹거리와 풍물이 모여있다. 환율은 1대만달러당 35원 수준. 교통요금을 비롯한 물가는 한국과 비슷하다. 항공협정 체결 후 대만까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주 4회씩 운항한다. 내년 말까지 중쩡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7시간 이상 머무는 탑승객들에게 고궁박물관을 비롯한 시내 주요 코스를 버스로 도는 기회를 무료로 제공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