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부 시인 산문집 『산길』 펴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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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한 20년쯤 산을 오르니까 산에서 글이 나오데요."

산이 닫혔던 시심을 활짝 열어줬다는 시인 이성부(60·사진)씨. 산을 오르며 얻은 깨달음, 전문 산악인 못지 않은 산행 지식과 기법 등에 관한 글을 모아 산문집 『산길』(수문출판사)을 냈다. 산문집은 산행 수상, 삼각산과 지리산에 관한 글만 따로 모아놓은 부분과 산행 기법 등으로 이뤄졌다.

이씨가 1980년대 초부터 죽기살기로 산에 오르고 암벽을 등반하고 했던 사연은 문단에 잘 알려져 있다. 신문기자로 일하던 그는 80년 고향 광주의 진실이 총칼 앞에 짓뭉개질 때 참기 힘들었음을 토로했다. 그래서 한동안 시를 끊기도 했다. 마음을 다스리자며 묵묵히 수행정진하는 마음으로 산에 오르내리길 10여 년. 어느날 산이 시로 가는 길을 다시 열어주었다. 첫 열림은 등정 후에 후들거렸던 다리만큼이나 떨렸다.

"저리 땀흘리며 안간힘을 쓰나/그래도 살겠다고 저리 부비적거리나/어거지로 올라와서 두 팔 벌리고/푸른 하늘 읽어본들/무슨 소용이더냐/올라오는 과정 이미 바르지 않았으니."('부끄러운 등반' 중)

그리고 침묵의 시간 동안의 그 독한 회의를 버텨낸 뒤 산은 그 자체의 넉넉함으로 그를 풍성하게 했다.『빈산 뒤에 두고』『야간산행』에 이어 지난해에는 연작시집 『지리산』을 냈고 이 시집으로 대산문학상을 받았다.

"지리산에서 시작한 백두대간 완주 계획이 이제 90% 달성됐네요. 올해안으로 완주를 끝내면 시가 한 1백편쯤 떨어질라나."

지리산 정상에 오른 횟수만 1백여 번인 그는 "산은 나를 속이지 않고 나도 산을 속일 수 없다"고 한다. 폭음을 한 뒤나 컨디션이 안 좋으면 쉽게 보이던 바위산도 두렵게 다가오고, 무리해 덤비면 산은 조그만 생채기로라도 체벌을 가한다고 한다.

20년 산행의 결과 "몸 움직이는 게 창작엔 필수"임을 깨달았다는 이시인. "겨울산과 홀로 산행이 좋아지면 산악인이 다 된 것"이라는 그는 결국 문학의 길도 고독과 싸우고 일부러 고난의 행군을 하는 일임을 알려준다. 한편 이씨가 62년 등단 후 쓴 시 중 사랑시편만 모아 최근 펴낸 시선집 『너를 보내고』(책만드는집)도 독자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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