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타임오프제 오늘 시행 … 연착륙이 우선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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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타임오프(유급 근로시간 면제) 제도가 오늘 첫발을 내디딘다. 1997년 개정된 노조법의 ‘노조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 조항이 13년 만에 부분적으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제부터 타임오프가 정한 한도 외의 노조 전임자에게 사측은 급여를 지급할 수 없게 된다.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는 기존의 투쟁일변도 노동운동에도 일대 변화가 예상된다.

이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기까진 많은 시련과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 이미 기아차 노조에 이어 GM대우차 노조는 파업을 결의해 놓고 타임오프제 무력화에 나설 태세다. 강성 노동단체와 일부 정치권은 벌써부터 노조법 재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일부 기업에선 법을 에둘러가는 이면(裏面)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노조가 채용한 직원에게 임금을 지급하거나 특별조합비를 조성해 보전하는 식의 편법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노조와 갈등을 빚느니 적당히 뒷돈을 대주는 것이 더 큰 손실을 막을 수 있다는 사측의 근시안적 판단 때문이다. 이걸 노동계는 노리고 있다. 힘겨루기를 통해 사측을 굴복시켜 타임오프제를 유명무실화하는 전략이다.

기아차는 타임오프제의 순항 여부를 가늠할 풍향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측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조금 힘들더라도 꿋꿋이 원칙을 지켜 잘못된 틀을 확 바꾸겠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 파업을 무기로 양보를 얻어내려는 노조의 구시대적 행태가 더 이상 먹혀 들지 않는다는 걸 확실히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노동계는 ‘관행’ 타령만 할 게 아니다. 현대중공업 노조의 선례를 보라. 현대중 노조는 55명인 전임자 수를 30명으로 감축하기로 했다. 타임오프의 적용을 받지 않는 15명의 전임자 급여는 살림살이를 아껴 노조가 직접 주기로 했다. 군살을 빼면 다른 노조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재정적 독립은 노조의 자주성과 명분을 강화한다. 타임오프제의 시행 초기에 어느 정도 혼란과 부작용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노사 모두에게 득(得)이 될 게 분명하다. 노·사·정이 합의해 만든 제도인 만큼 일단 연착륙이 중요하다. 문제점은 그 후 보완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