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용 서민대책 남발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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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서민·중산층 지원 대책을 내놓았다. 국민임대주택 1백만호 건설, 건강보험 적용 약값과 휴대전화·전기 요금 인하, 장애인 근로소득 공제폭 확대 등 굵직한 내용들이 무더기로 발표됐다. 정부의 존재나 정책의 목적이 결국 국민을 잘 살게 하는 데 있다면 이번 대책은 평가받아 마땅하다. 특히 외환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경제는 살렸지만 빈부 격차가 확대되는 대가를 치른 만큼 서민·중산층 대책은 이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 대책은 시기적으로나 내용상으로나 다분히 다음달 지방선거를 의식한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정부는 6개월마다 정례적으로 내놓는 대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지난 연말의 대책은 보잘것없었다. 종합소득세 10% 인하와 청소년 실업대책 등 이미 예산 심의 과정에서 발표된 내용들을 재탕한 정도였다.

재원이나 실현 가능성이 모호한 대책도 눈에 띈다.국민임대주택 1백만호 건설이 대표적이다. 건설교통부가 지난달 대통령 업무 보고를 거쳐 발표한 업무 계획에는 내년부터 10년간 국민임대주택 50만호를 짓는다는 것이 목표였다. 한달 만에 건설 목표가 두배로 뛰었다면 당시 업무 계획이 잘못됐거나, 아니면 다른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볼 수 있다.10년간 50만호도 차기 정부가 해야 할 일인 데다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과 택지 문제 등으로 실현 가능성이 의문시되던 터였다. 여기에 세금 공제폭까지 늘려 준다면 이미 눈덩이처럼 커진 재정적자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정책은 집행 대상인 국민이 취지와 내용을 충분히 알고 적극적으로 협력할 때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중산층·서민 대책이 중요하다면 일년 내내 꾸준히 해야지,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 밀린 숙제하듯 한꺼번에 쏟아놓다 보면 정책의 현실성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선거철만 되면 나오는 이런 선심 정책이 아직도 약발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정책 입안자들이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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