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진급비리 혐의 육본 준장 이번 주말 기소키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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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장성 진급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군 검찰은 육군본부 인사담당 L준장을 기소키로 했다. 군 관계자는 22일 "L준장은 특정인을 진급시키기 위해 허위 공문서를 작성한 혐의가 있다"며 "이르면 이번 주말 불구속 기소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군은 또 L준장 기소와 함께 수사 내용을 전면 공개하는 것도 적극 검토 중이다. 다른 관계자는 "수사와 관련된 각종 의혹들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어 수사 진행 상황을 알리는 것도 내부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진급 비리에 육군본부 수뇌부의 개입 의혹이 제기됐지만, 증거 확보에서 문제가 있어 기소 대상에선 제외될 것 같다"며 "향후 혐의가 드러나면 그때 가서 법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군 검찰은 진급과 관련된 금품 수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이번 주 초부터 육본의 장성 진급 업무 관련자들에 대한 계좌추적에 들어갔다. 보직해임된 군 검찰관 2명은 이날 오후 국방부 공보관실 등을 찾아 "근거 없는 수사 상황 유출을 이유로 보직해임한 것은 부당한 조치"라며 재항의했다. 그러나 이들과 교체된 군 검찰의 새 수사진은 지금까지 언론에 공개된 ▶진급자 사전 내정 의혹 ▶비리 문건 위조 여부 등에 대한 진위 확인에 착수했다.

◆ 진급자 사전 내정됐나=군 소식통에 따르면 구속된 육본 C중령이 지난 10월 5일 장성진급 선발위원회가 열리기 직전 작성한 진급 대상자 명단 일부에 음영 표시가 돼 있었다고 한다. 한 장짜리 이 문건은 선발위에 전달됐고, 음영이 표시된 사람은 모두 진급됐다고 한다. 이 때문에 군 안팎에선 진급자가 사전에 정해진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또 군 검찰이 육본에서 압수한 금고와 컴퓨터에선 '3.15 인사참모부장 지시'라는 C중령 메모와, "최고 수뇌부에 수시로 장성 진급 관련 보고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전.현 육본 진급계장의 인수인계 파일도 발견됐다고 한다. 컴퓨터 디스크에서 삭제돼 있는 것을 군 검찰이 복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육본 최고 수뇌부가 올 초부터 장성 진급 인사에 개입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 육본 수뇌부서 문서 위조 지시했나=이른바 '경쟁자 탈락용 비리 문건'도 문제다. 이는 기무사.헌병대에서 육본에 넘긴 비리 자료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L준장은 육본 최고 수뇌부로부터 비리 문건을 받아 이를 선발위에 제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문건은 인사검증위원회의 사실 확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 검증위 도장이 찍힌 채 제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건에 이름이 오른 17명은 선발위 심사에서 모두 탈락했다. 검증위는 선발위에 앞서 각종 인사 자료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남재준 육참총장이 만든 육본 내 기구다.

이 때문에 특정인의 진급을 위해 문서가 꾸며지지 않았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군 검찰이 문제의 17명 중 일부를 조사하니 문건이 과장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거액의 빚을 졌다"는 내용은 "주변에서 5만원을 꾼 적이 있다"는 식이다.

또 육본 최고 수뇌부가 L준장에게 "비리 자료가 인사 검증위를 거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한 것은 인사 비리에 수뇌부가 개입한 정황 증거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 육군의 반박=육군은 당당하다. 음영이 표시된 명단은 선발위가 열리기 전날 선발위원장 등이 자체 심사를 통해 유력 진급자로 판단한 인물들로, 이를 실무자인 C중령이 문서에 표시해 다음날 위원장에게 다시 넘겼다는 게 육군 주장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위법은 없다.

진급대상자 비리 문건 위조 의혹도 육군은 "육본이 검증위를 거치지 말도록 L준장에게 지시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기무사령부와 헌병 부대의 건의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검증위에서 사실 확인에 착수하면 그 문서를 작성한 기무사.헌병대가 노출된다고 당사자들이 우려했다는 것이다. 또 검증위가 사실 확인 절차만 밟지 않았을 뿐 위원들이 해당 문서를 열람한 뒤 검증위 도장을 찍은 만큼 불법으로 볼 수는 없다고 육군은 주장했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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