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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수친척 5명 신병처리 뒷전 中·日 체면싸움에 한국 속앓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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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 8일 중국 선양(瀋陽)주재 일본 총영사관에 들어갔다가 중국 경찰에 연행된 장길수군 친척 5명 문제가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 꼴이 되고 있다.

국제법상 사태 해결의 당사자인 중·일 양국이 이들의 신병처리는 뒷전으로 제쳐놓고 국가 위신을 건 공방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조속한 인도주의적 처리를 요구했는 데도 양국은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19일에도 양국 정부 관계자들은 이들의 신병처리라는 인도주의적 문제보다 주권 침해 문제나 양국 내 여론 문제에 집착하는 반응을 보였다. 양국간 대립의 이면에는 "양국 모두 인권 문제에 등을 돌리고 있다"는 국제적 비난 여론을 최소화해보려는 의도도 얽혀 있는 것 같다.

정부는 중·일간 마찰로 이 문제가 장기화하면서 덩달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현실적으로 이 문제에 관한 외교적 관할권이 없는 데다 국내에선 "정부는 뭘 하고 있느냐"는 비난 여론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정부기구(NGO)는 탈북자들의 잇따른 주중국 해외공관 진입과 중·일 대립의 볼모가 된 길수군 친척 문제를 들어 탈북자에 대한 난민 지위 부여 등 대중국 압박 정책을 요구하는 판이다.

정부는 길수군 친척 5명이 제3국 추방 형식을 거쳐 한국에 올 것으로 확신하는 분위기다. 이들의 신병처리 문제에 칼자루를 쥔 중국이 다른 탈북자의 한국 망명 때와 마찬가지로 "국제법과 국내법, 인도주의적 원칙에 따라 문제를 처리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5명이 미국행을 요구했음에도 정부는 한국행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중국에 전달했었다. 일본이 이들의 제3국행을 마지노선으로 잡고 있는 점도 희망적 관측을 낳게 한다.

그러나 정부는 이들의 중국 출발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분석한다. 중·일이 모두 체면을 구기지 않는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양국간 대립의 핵심은 중국의 일본 주권침해 문제.정부 관계자는 "양국은 길수 친척의 제3국 추방에는 공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러나 중국은 일본이 이들의 제3국 추방 후 주권침해 문제를 다루겠다는 데 반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요컨대 일본은 선(先) 인도적 문제 해결,후(後) 주권침해 문제 처리인데 반해 중국은 일괄 타결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중·일간에는 반일·반중 감정이 비등하는 상황이다. 중국의 대일 강경 입장은 "일본 정부는 비우호적 열기를 식혀달라"고 한 탕자쉬안(唐家璇)외교부장의 19일 발언에서 잘 드러난다. 일본도 길수군 친척 문제는 "양자 문제가 아닌 국제 문제"라는 카드를 빼들고 나섰다. 양국이 서로 상대에 대해 배수진을 치는 분위기다.

피랍·탈북인권연대의 도희윤 대변인은 "중국과 일본이 서로의 국제적 위상만을 고려해 탈북자 5명의 인권을 인질로 잡고 있는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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