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4인회담 합의 이제 시작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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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당대표와 원내대표 4인이 마라톤 회담 끝에 국회 정상화에 합의함으로써 상생의 정치에 첫발을 내딛게 됐다. 새 정치를 하겠다는 굳은 약속하에 출범한 17대 국회가 실제로는 국민에게 필요한 법안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채 정치력 부재로 표류해 왔기에 여야 지도부의 이번 합의는 더욱 의미가 있다.

회담이 끝난 뒤 양당 지도부가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신뢰의 기초를 쌓았다"고 평가하는 모습도 보기 좋다. 서로 만나 성의를 갖고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다 보면 의심과 오해를 풀 수 있고 접점도 찾을 수 있다. 상대방을 '불의의 세력' 또는 '국가를 망치려는 세력'으로 몰아붙이고, 자신은 '역사와 정의의 편'이라거나 '진정한 애국세력'이란 과대망상증에 빠져있다면 정치는 발붙일 곳이 없다.

4인 회담의 합의는 종착점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4개 쟁점 법안은 합의 처리를 원칙으로 하며 회기 내 처리에 최선을 다한다'는 합의문을 놓고 아전인수식 해석에 빠져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한나라당은 '합의 처리 원칙'을 내세우면서 아무런 대안을 내놓지 않고 시간 보내기로 일관해서는 안 되며, 열린우리당도 '회기 내 처리'를 강조하면서 야당의 의견을 일축하고 숫자의 힘으로 밀어붙이려 해서는 곤란하다. 그러면 그나마 형성된 신뢰의 씨앗조차 짓밟는 꼴이 된다. 여당은 들을 귀를, 야당은 합의를 이뤄내려는 성의를 가지기를 부탁한다.

양당 지도부의 짐도 무겁다. 합의문에 따르면 쟁점 법안 중 국회 상임위에서 합의를 못 하면 4인 대표회담에서 풀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여당 지도부는 4대 입법의 연내 처리를 주장하는 일부 의원의 국회 농성을 이쯤해서 접도록 설득해야 한다.

여야는 모처럼 마련된 4인 회담의 합의 틀을 존중하고 발전시켜 나가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쟁점 법안 중 일부라도 합의 처리하는 전례를 남기는 데 성공한다면 진흙탕 싸움으로 일관하던 국회를 대화와 타협의 문화가 지배하는 곳으로 바꿔 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