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부녀의 정' 이어준 울산 북구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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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에서 울산으로 시집온 딘 티 퀸치씨가 편지를 읽고 있다. [울산 북구청 제공]

"얘야, 아비가 편지를 쓴다만 이게 네 손에 닿을지 모르겠구나.… 집안 걱정은 말아라. 너를 보낼 때 남의 빚을 낸 것이 아니라 집에 있던 것으로 한 것이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온 식구들이 네가 시집살이에 잘 적응하기만 바라고 있단다."

세밑 낯선 땅에서 한국의 울산 북구청으로 편지 한 통이 날아들었다. 베트남 하이퐁도에 사는 트란 반 투안(54)이 넉 달 전 한국으로 시집간 뒤로 소식이 두절된 장녀 딘 티 퀸치(26)를 그리는 애틋한 사연을 담은 것이었다.

봉투에는 사위 임모(47)씨의 혼인서류에 적힌 출생장소가 서투른 한글 글씨로 적혀 있었다. 네 번이나 주소불명으로 반송된 점을 감안해 관공서가 좀 찾아달라는 듯 '울산 북구청장'이란 문구도 있었다. 투안은 자신의 7년 독일생활을 예로 들며 "(한국어를 배움에 있어) 식구들이 고쳐주는 방식으로 공부해야 말이 빨리 는다"고 조언했고, 혹여 비관적인 생각에 사로잡힐까봐 " 많은 친구관계는 아직 필요치 않단다. 왜냐하면 쓸데없는 걸 생각하는 데 시간을 많이 보내기 때문이야"라는 충고도 했다.

"타국에 떨어져 아프면 큰일이니 필요하면 어려워하지 말고 네 남편이나 시어머니에게 말해 진찰을 제때 받아야 한다"며 건강에 대한 주의도 잊지 않았다.

그의 편지는 "한 달에 한두 번 베트남 시간으로 양력 1일과 15일 18시에 전화해 주고…"라는 당부로 끝맺었다.

울산 북구청은 지난 16일 이 편지를 받아 전문업체의 번역을 거쳐 사연을 파악한 뒤 5일 동안 수소문한 끝에 퀸치에게 전달했다.

호계동의 24평형 임대아파트에서 시어머니(81)와 함께 살고 있는 퀸치는 편지를 받고 눈물을 글썽이며 "낯선 시집생활에 적응하랴, 이사하랴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며 "지금의 생활이 행복하지만 베트남의 부모와 남동생 생각에 잠 못 이룰 때가 많다"고 말했다.

퀸치는 지난 2월 베트남의 한 호텔에서 결혼알선업체를 통해 남편 임씨를 만나 다른 12쌍과 함께 합동결혼식을 올린 뒤 지난 9월 입국했다.

시어머니는 "아들의 건강이 좋지 않아 직장을 구하지 못해 어렵게 세 식구가 생활하고 있다"고 전했다.

울산=이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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