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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생태 월드컵이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오는 8월 11일부터 18일까지 코엑스에서 제8회 세계생태학대회(INTEC

OL VIII)가 열릴 예정이다. 그보다 앞서 이달 말부터는 월드컵이 열린다. 4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지구촌 최대의 축제가 21세기 벽두에 우리나라에서 열린다. 참으로 가슴 벅차고 뜻 깊은 일이다. 세계생태학대회도 4년마다 한번씩 열린다. 생태학자들에게는 축구 월드컵 못지않게 중요한 또 다른 월드컵이다. 나는 요사이 축구 월드컵을 기다리는 마음도 마음이지만 '생태 월드컵'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세계적 환경대회 첫 유치

우리나라는 월드컵 5회 연속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갖고 있으면서도 단 한 경기도 이겨보지 못한 치욕적인 기록도 함께 지니고 있다. 그래서 아예 우리 안방에 불러들여 하는 이번 대회에서 한 경기라도 이기고 싶고 16강 아니 기왕이면 8강까지도 진출하고 싶은 욕심이 굴뚝같다. 한 경기라도 승리로 이끌었을 때 온 국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환호의 물결을 이룰 걸 상상하면 벌써부터 피가 끓는다.

사실 축구 실력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는 아직 월드컵을 개최할 자격이 없다고 보는 것이 솔직한 평가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어려운 개최권을 따냈고 이제 전례 없이 훌륭한 잔치를 벌이기 위해 온 국민이 힘을 모아 노력하고 있다. 그런 만큼 경기에서도 좋은 결과가 있고 우리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자격이 없기는 생태 월드컵도 마찬가지다. 유엔의 환경지수 평가에 따르면 세계 1백42개국 중 1백36위인 나라가 무슨 염치로 세계 생태학자들의 잔치를 열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21세기 첫 잔치를. 그래도 우리 생태학자들은 당당하게 이 행사를 따냈고 지구촌 곳곳에서 모여들 수천명의 생태학자들과 함께 '변화하는 세계 속의 생태학'이라는 주제로 뜻 깊은 모임을 준비하고 있다. 21세기에는 우리나라가 경제대국은 물론 환경대국으로도 세계 속에 우뚝 설 것을 다짐하며.

언젠가 우리나라 어느 연구재단에서 특별히 첨단과학을 지원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기에 원서를 내볼까 하고 문의한 적이 있다. 그러나 생태학은 첨단과학이 아니라서 원서를 내봐야 가망이 없을 것이라는 답변이었다. '첨단(尖端)'이라는 말은 원래 'cutting edge'라는 영어 표현을 우리말로 옮기느라 사용하기 시작했다. 'Cutting edge'라는 말은 'leading edge'라는 말과 혼용해 쓰는 표현으로 '앞서간다'는 의미가 강한 것이지 '뾰족하다'거나 '미세하다'는 뜻이 아니다.

생물다양성의 고갈을 비롯한 각종 환경문제로 인해 우리 인류의 생존 자체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그 위기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는 학문이 생태학인데, 그런 학문이 첨단학문이 아니라면 과연 어떤 학문이 첨단학문일 수 있을지 의아스럽다.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우리가 제거되고 난 다음 이른바 '첨단학문'분야들의 연구가 다 무슨 소용인가. 나는 감히 우리 시대에 생태학만큼 절실한 학문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첨단학문 인정 못한다니…

다행히 최근 환경부는 생태학의 중요성을 인식해 서울 세계생태학대회를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것은 물론 우리나라 환경보호의 장기적인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국가생태 기초자료 확보사업'과 '생물자원의 주권확보 대책사업' 계획을 수립해 현재 예산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국내 다른 연구재단들이 외면해온 사업들을 뒤늦게나마 환경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국가의 앞날을 걱정하는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반갑게 생각한다. 지금까지 환경부가 기획한 그 어느 사업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업들이다.

이번 월드컵을 환경 월드컵으로 준비하자는 구호를 종종 듣는다. 우리가 비록 16강 진출의 꿈을 이룬다 해도 세계인들에게 삶의 질이 낮은 후진국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게 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많은 잔치가 될 것이다. 축구 월드컵과 생태 월드컵이 손을 잡고 함께 뛰면 훌륭한 환경 월드컵을 준비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환경부가 기획하고 있는 두 사업은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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