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타고라스의 제자 만들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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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피타고라스는 제자를 만들기 위해 처음에는 자기의 강의를 들으면 돈을 주겠다고 해서 가능성이 있는 젊은이들을 불러 모았다고 한다. 일단은 돈에 끌려 피타고라스의 강의를 듣던 젊은이 중에서 공부에 재미를 붙인 사람들이 생겨났다. 얼마 후에는 돈을 주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그에게 배우기를 원했다. 나중에는 돈을 내고라도 배우겠다고 했을 것이다.

미적분 잘 모르는 대학생

우리나라 공교육의 위기가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우수한 인력밖에는 자산이 없는 우리나라가 이러다가는 선진국 진입은 고사하고 그동안 쌓아올린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런 심각한 상황이 외부에 의해 강제된다면 어떨까? 가상적으로 어느 외국이 우리나라 교육을 놓고 "수월성 있는 교육을 못하게 교육제도를 바꿔라""교과서에 재미를 못붙이고 무조건 외우게 과학 교과서를 만들어라" 등의 공작을 꾸민다면 우리는 그것을 나라를 망하게 하는 전쟁 행위로 규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은 남이 시킨다면 국민적인 반대운동이라도 벌일 일을 자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대부분 고등학교 수학·과학 과목에 대학 1학년 수준의 내용을 공부하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그 과목 학점을 인정받는 AP(advanced placement) 클라스 제도가 정착돼 있다. 우리나라는 반대로 대학 신입생을 놓고 고등학교 과정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웃지 못할 일이 서울대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미적분의 기본을 모르는 학생에게 역학이나 기초공학 과목을 가르칠 수는 없는 것이다. 사실 초등학교 수준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의 수학·과학 실력은 세계 최상위급이고, 반면 미국은 중간 정도다. 그런데 올라갈수록 우리나라 학생은 학력이 떨어져 국제올림피아드 성적 이외에는 고등학교 수준에서 내놓을 만한 것이 별로 없다. 인텔 수준의 과학경연대회도 없다. 대학에 가면 미국과 완전히 역전이 일어난다. 다행히 88올림픽 때 보여주었듯이 우리나라는 하자고 하면 하는 결속력이 있다.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면 미국에서도 논의만 거듭되고 시행은 답보 상태인 교육개혁이 생각보다 쉽사리 이뤄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지도자의 역할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있다고 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중·고등학교부터 과학 기술이 국가의 경쟁력을 가름할 21세기에 걸맞은 과학 교육을 시킬 수 있을까? 교육의 요체는 피타고라스처럼 학생 스스로 공부에 재미를 느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하게끔 유도하는 것이다. 과학 교육의 요체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스스로 관찰하게 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 경기여고의 한인옥 교사가 내가 대학 강의에서 활용하는 회절격자 필름을 구하고 싶다고 연락해 좀 나누어 드렸다. 우주 팽창의 비밀을 밝히고 우주의 원소 분포를 조사하는 데, 그리고 양자역학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수소의 선스펙트럼을 보고 학생들이 경탄했다는 메일을 받고 나도 기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한번 아름다운 수소의 선스펙트럼을 본 학생들은 평생 자연의 신비에 대한 동경심을 가지고 더 알고 싶은 마음을 지니게 될 것이다.

스스로 문제 해결 유도를

다른 하나는 자연현상을 통합적인 시각으로 보게 지도하는 것이다. 이제 과학은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 식의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서 벗어나 자연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기에 이르렀다. 자연의 신비는 우주의 기원부터 생명현상에 이르는 거대한 드라마의 곳곳에 숨어 있는 것을 깨달으면 자연의 원리들이 보다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과학은 더 이상 식을 암기해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우주에서 인간의 위치를 탐구하는 가장 인간적인 지적 활동이 되는 것이다.

암담한 우리나라 중등교육 현실에서 영재학교가 적지 않은 기대를 안고 내년부터 출발하게 됐다. 막대한 정부의 투자와 관련자들의 노고가 따를 것인데, 1백m 경기에서 10m 앞서 출발했기 때문에 우승하는 식의 선행학습으로 끝나서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다. 그보다는 뛰어난 학생들에게 충분한 지적 도전을 제공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데서 재미를 느껴 스스로 문제를 찾아 공부하도록 도와주는 피타고라스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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