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추락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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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달리기 시합을 하는 초등학교 학생들이 모두 손을 잡고 함께 출발, 다같이 골인한다.

1백세가 넘은 할머니인데도 불안한 노후(後)에 대비해 쓰지 않고 저축한다.

이게 어느 나라인가.

바로 일본이다.

스스로 '잃어버린 10년'이라며 지난 10년간의 저성장·디플레이션을 한탄하고, 정치·행정 개혁 없이는 미래가 없다고 개탄하면서도 일반 대중은 '생활 위기'를 모르고 산다. 막대한 재정 적자를 감수하고, 무거운 금융 부실을 그냥 떠안고, 대기업은 종신고용을 유지하며 일반 대중을 끌어안고 가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국가신용등급이 27년 만에 최저로 떨어지고 국가경쟁력 평가에서도 한국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지만, 여전히 국내총생산이 독일의 두배가 넘는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며 세계 제1의 채권국이다.

이게 어느 나라인가.

바로 일본이다.

중앙일보 경제연구소 특별취재팀이 "일본은 과연 위기 상황인가"라는 질문을 갖고 도쿄(東京)에 머무른 열흘 동안 일본은 다양한 얼굴로 질문에 답했다.

재정적자·금융부실만 보고 일본을 위기 상황이라고 하는 것은 체중·혈압만 재 보고 중병(重病)선고를 내리는 것만큼이나 조급하다.

'무라 샤카이(村社會)'로 불리는 특유의 집단의식, 10년을 까먹고도 남은 부(富)가 받쳐주는 체력, 막강한 제조업에 거는 기대 등 미세한 세포 구조의 맥을 일일이 짚지 않고는 일본을 진단하기 어렵다.

서구 주도의 세계화 속에서 일본은 여전히 '일본식'을 고집하고 있었다.

"우리는 소모전을 펴더라도 함께 사는 방안을 찾는다."

"일본은 원폭(原爆) 정도의 충격이 닥쳐야만 변한다."

취재팀이 만난 많은 인사의 반응은 이렇게 크게 갈라졌다.

'더운 물 속의 개구리'처럼 위기를 모르는 채 서서히 침몰할지, 패전(敗戰)·오일쇼크·엔고(高)의 위기를 훌륭히 극복한 것처럼 21세기에도 '일본식 모델'의 성공담을 다시 만들어낼지, 일본은 지금 거대한 실험 중이다.

결과는 두고 봐야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부국(富國) 일본이 '늙어간다'는 것이다.

65세 이상 인구가 17.4%로 이미 완연한 노령사회인 일본의 전체 인구는 2006년을 정점(1억2천8백만명)으로 급격히 줄어들게 돼 있다. 해서, 일본이 다시 일어난다 하더라도 지난날과 같은 활기찬 고성장 사회는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다들 알고 있다.

미래를 걸머질 젊은 세대들 사이에선 '후리타 족(族)'(free-arbeit

er:일정한 직업 없이 자유분방하게 살려는 젊은이들)·'파라사이토 족'(parasite:주거비를 아끼려 다시 부모집에 들어가 '기생'하며 사는 젊은이들)·'싱구루 족'(single:독신주의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

흔들리는 늙은 부국(富國)-.

우리보다 앞서 부자가 됐고,우리보다 앞서 늙어가고 있는 일본은 과연 어떤 길을 갈까.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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