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기술 발전, FIFA로 하여금 비디오 판독제 도입케 만들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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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블라니' 하나에 지구촌의 이목이 온통 쏠린 '2010 남아공 월드컵'. 이 영광의 무대에 서기 위해 4년간 피땀 흘린 선수들 및 이들과 호흡을 같이 하며 울고 웃는 팬들. 팬들이 마치 경기장에 있는 것과 같은 실감나는 경기를 볼 수 있는 것은 월드컵 중계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때문이다. 특히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3D 방송이 처음으로 선보였고, 또 초당 2700장을 찍는 초고속 울트라 모션 카메라가 등장했다.

이같은 장비의 발전은 이번 월드컵에서 유독 많이 제기되고 있는 '오심 논란'의 배경이 되고 있다. 현재까지 국제축구연맹(FIFA)은 비디오 판독 제도 도입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월드컵 중계 장비와 기술이 발달하면 할 수록 심판이 숨을 곳은 점점 사라진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이번 대회기간 중에 FIFA가 비디오 판독제도를 도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기술발전의 관점에서 역대 월드컵 중계 방송을 되돌아 본다.

◇프랑스월드컵부터 HBS가 중계=먼저 우리가 안방에서 월드컵 중계화면을 보는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한국 월드컵 공식 방송사는 SBS이지만 실제 TV중계용 영상 및 음성 국제신호 제작은 FIFA와 중계 계약을 맺은 프랑스 스포츠중계 전문 외주 제작사 ‘HBS(Host Broadcast Services)사가 한다. HBS가 64경기를 모두 제작해 세계 각국에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이 회사는 지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부터 월드컵 중계방송을 전담해왔다.

이 회사는 최적의 중계방송 제작을 위해 첨단 장비를 확보하고 있다. 지난 1998년 프랑스월드컵이 "월드컵 TV 중계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이유다. 이전에는 각 주관 방송사가 10여대의 카메라로 105m x 68m 크기의 경기장을 찍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다 HBS가 전담 방송을 맡은 첫해인 98 월드컵에서는 한 경기장에 최대 18대의 카메라가 설치됐다. 약 150명의 전문인력이 투입돼 그라운드는 물론이고 양팀 벤치와 관중석등 경기장 구석구석의 상황을 놓치지 않고 화면에 담기 시작했다.

◇한ㆍ일 월드컵땐 HD로 선수 땀방울까지=2002년 한ㆍ일 월드컵 중계의 가장 큰 특징은 HD(고화질)TV였다. 원래 HBS은 SD(표준화질)디지털방식으로 화면을 제작됐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은 HBS가 제작하는 유럽식 SD급 중계방송과는 별도로 HD TV용 중계 화면을 직접 제작해 교환했다. KBS·MBC·SBS 지상파 3사가 구성한 한국방송단(Korea Pool)은 국내에서 열리는 32경기 중 개막전을 포함한 24경기를 HD로 제작했다. HDTV 보유자는 SDTV 보유자보다 5배 이상 선명한 화질로 경기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라운드의 잔디, 선수들이 흘리는 땀방울까지 선명히 보인다"는 칭찬을 받았다.

또한 HBS는 개막·폐막전 등 주요경기엔 카메라 23대를, 일반경기에는 20대를 투입했다. 스테디캠(무진동 ENG)·무인이동카메라 등의 특수카메라는 선수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화면에 담았다. 경기장 양쪽 전광판에 설치되는 전술분석(tactical) 카메라는 시청자가 양팀 전술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줬고 양쪽 골대에도 카메라가 설치돼 득점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초당 90장을 잡는 슈퍼슬로모션 카메라도 최대 6대까지 배치, 득점 장면을 분석하거나 심판의 오심 여부 등을 ‘쪽집게’처럼 포착했다.

◇독일 월드컵땐 공 차는 소리 들려=2006 독일 월드컵 첫 경기였던 독일 대 코스타리카의 개막전은 현란한 중계 기술의 '장'이었다. HBS가 모든 경기를 HD(고화질) 5.1채널 서라운드 오디오방송으로 중계 방송한 것이다. 중계 화면은 16대 9 비율의 와이드 스크린 포맷과 HD 방식의 고화질로 지구촌 곳곳에 뿌려졌다. HDTV와 5.1채널 돌비시스템 홈시어터를 갖춘 가정에서는 선수들의 숨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골대 뒤, 관중석, 하프라인 등 경기장 곳곳에 설치된 40여대의 마이크는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 패스하는 소리, 공 차는 소리까지 마치 경기장에서 게임을 보고 있는 듯한 입체적 음향을 즐길 수 있었다. 카메라 대수도 늘어났다. HBS는 경기장 당 25대의 HD 전용카메라를 설치해 선수들의 동작을 현장감있게 안방으로 전달했다.

◇남아공 월드컵땐 초당 2700장 찍는 카메라로=이번 대회에서 유난히 오심 논란이 많이 제기된 데는 초고속 울트라 모션 카메라의 도입이 한몫 했다. 이는 초당 2700장을 찍을 수 있는 고성능 카메라. 공을 찰 때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의 움직임, 헤딩할 때 튀는 땀방울까지도 포착한다. 섬세함이 이 정도이니 헐리웃 액션, 오프사이드, 핸들링 등이 숨을 곳이 없는 것이다.

중계 카메라 수도 늘었다. 지난 대회보다 7대 늘어난 경기장 당 32대. 이중 일부는 무인카메라 스파이더캠이다. 직경 1.6㎜의 와이어로 경기장 사방에 달려있는 조명탑에 카메라를 매달고 원격 조정으로 선수들을 찍는다. 경기장 고공 촬영을 통해 오프사이드 선을 명쾌하게 표시할 수 있었던 것이 이 카메라 덕이다. 이번 대회에선 또 항공 촬영이 새로 도입됐다. 개ㆍ폐막전 행사와 각 경기의 선수 입장 등 공중 부감을 연출할 수 있다.

한편 이번 대회에선 3D 중계가 화제를 모았다. 경기장의 원근감이 살아나 경기장 관중석에 앉아있는 느낌을 줄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집중도가 높아지는 프리킥 장면에선 키커와 수비벽, 골키퍼 사이의 원근감이 살아나 훨씬 실감나게 경기를 지켜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3D 중계의 한계도 동시에 드러났다. 그라운드를 위에서 내려다볼 때는 일반 중계와 화면 차이가 거의 없었다. 또 선수들 클로즈업 장면도 많지 않았고, 화면의 각도도 다양하지 않았다. 이는 한 경기장에 투입된 소니의 3D 카메라가 8쌍(총 16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SBS 중계 총괄팀의 손병찬 팀장은 "2014 브라질 월드컵 땐 3D 중계 기술이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도움말:SBS 중계 총괄팀 손병찬 팀장, 기술팀 원충호 팀장
◇사진출처:HBS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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