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캐나다 국론 분열 부른 ‘행사비용 1조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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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나 토론토 남쪽의 전시회 구역에 자리 잡은 국제미디어센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취재하러 온 수백 명의 내외신 기자들을 위한 곳이다. 행사 진행요원인 한 여성은 G20 정상회의에 대한 토론토 시민의 반응을 묻자 익명을 전제로 이런 불평을 털어놓았다. 좀 의외였다. 행사요원이라 외국기자에겐 판에 박힌 답변만 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번 행사를 바라보는 현지 여론도 둘로 갈라졌다. 캐나다 최대의 국제행사를 열게 돼 자랑스럽다는 찬성 의견과 돈을 너무 많이 쓴다는 반대 의견이 충돌했다.

캐나다 정부는 G8과 G20 정상회의를 안전하게 치르기 위해 10억 캐나다달러(1조1680억원) 정도의 예산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떤 예산을 포함하느냐에 따라 수치가 달라질 수 있어 정확하게 산정하긴 쉽지 않다. 아무튼 폭력시위를 막기 위해 캐나다 전역에서 동원한 경찰관 2만 명을 행사장 주위에 촘촘히 배치했다. 행사장 주변은 철책으로 둘러쳤다.

하지만 이런 노력도 26일 발생한 폭력시위로 빛이 바랬다. 토론토에서 사상 처음으로 최루탄이 사용됐다. 경찰차가 불탔고, 스타벅스 가게 유리창이 박살났다. 시민들은 망치를 휘두르는 검은 복장의 극렬 시위대에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돈을 많이 쓰고도 왜 이 모양이냐는 비판이 나왔다.

프랑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내년 G8과 G20 개최국인 프랑스는 행사 개최 비용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캐나다의 10분의 1이면 된다”고 답했다. 11월 서울 회의를 소개하는 한국 브리핑에서도 같은 질문이 나왔다. 손지애 G20 준비위원회 대변인은 “행사비용에 대해 외신 기자들의 관심이 많았지만 정확하게 계산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폭력시위가 터지긴 했지만 캐나다에서 배울 것도 있다. 대안미디어센터가 좋은 예다. 정부에 할 말이 많은 단체들이 언론과 비슷한 조건에서 취재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곳에서 비정부기구(NGO)들은 아프리카 등 빈국의 여성 문제에 대한 각국 정부의 관심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

또 이번 행사에서 드러난 캐나다의 내부 갈등은 11월 서울 G20 정상회의를 준비하는 우리에게도 시사점을 던져준다. 막상 행사를 마무리 지으면 “쏟아부은 비용에 비해 얻은 게 무엇이냐”는 질문이 틀림없이 나오게 돼 있다. 이에 대한 자신 있는 답변을 지금부터 만들어 놓아야 한다. 좋은 행사를 열면서 비용이나 보안 등에서 캐나다처럼 국론이 갈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토론토에서

서경호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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