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스타 기자' 기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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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혁명가인 체 게바라와 함께 남미 혁명전선에 참여했던 프랑스 지식인 레지 드브레는 미디어가 권력의 4부를 넘어 성직(聖職)화하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는 매스 미디어가 속세에서 대중에게 길을 밝혀주고, 삶의 모델을 제시하는 등 안내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미디어의 역할 및 발전과 더불어 요즘 들어서는 '스타덤'과 '팬덤'이라는 새로운 문화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영화·스포츠·정치·경제 등 여러 영역에서 수많은 스타들이 배출되고, 팬 클럽들이 결성되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역사적으로 스타의 기원은 종교적 성자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혼돈의 시대에는 칭기즈칸·나폴레옹·이순신 등 영웅이 스타가 되기도 했고, 근대에는 국가 지도자들이 이 대열에 오르기도 했다. 케네디·브란트·만델라 등이 그들이다. 문화연구가인 리처드 다이어 박사에 따르면 대중은 복잡하고 다원화해가는 생활 속에서 새로운 삶의 모델을 찾게 되는데, 그 대상 중 사회적 권위를 인정받으면 스타가 된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들어 대중은 우상이나 영웅 대신 정치인·경제인·언론인·연예인 등에서 스타를 찾아 자신의 지향점으로 삼으려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스타들을 제조하는 중심 수단은 매스 미디어다. 그런데 왜 한국 언론계에는 스타가 존재하지 않는가. 존재하더라도 왜 비판의 대상이 되기 일쑤인가. 그렇다면 한국에는 어떤 유형의 스타 언론인이 요구되고 있는가.

시대적인 환경에 따라 요구되는 언론인 스타의 유형은 다르다. 과거 일제 강점기와 권위주의 시대에는 지사나 투사적인 언론인이 스타로 규정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독자들에게 '길벗'이 되는 기자가 필요하다. 예컨대 미국 시카고에선 시카고 트리뷴지의 브레스린 기자가 쓴 기사를 읽었는지가 화제가 된다고 한다. 그는 항상 새로운 어젠다(의제)를 제공하고, 독자들은 그의 글을 통해 삶의 활력을 받기 때문이다.

선진국 언론계는 스타 기자들을 키우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사내 대학이나 특정 프로젝트 등을 통해 기자들에게 자기개발의 기회를 부여하는 게 대표적이다. 각 언론사가 스타 기자들의 스카우트 전쟁으로 몸살을 앓는 것은 이 연장선상이다.

이제 독자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기사만 읽는 추세다. 특히 새 독자층인 젊은 세대와 여성층을 확보하려면 스타 기자들을 많이 키워야 한다. 그들은 비판적이든 긍정적이든 하루에도 수십 건의 전화와 수백·수천 건의 e-메일을 받는 '기자 팬덤'을 형성해 갈 수 있을지 모른다. 따라서 최근 한국 신문계가 여러 형태로 독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좀 늦었지만 다행이다.

워싱턴 포스트의 스타 기자인 밥 우드워드도 자기 독자들에게서 비밀정보를 제보받지 못했다면 닉슨 대통령을 하야시킨 워터게이트 사건 전모를 파헤칠 수 없었을 것이다. 일류 신문의 요건 중에는 팀워크와 리더십도 중요하지만 벤 브래들리 같은 스타 편집국장과 스타 기자들을 얼마나 많이 키우고 파격적으로 대우하는가 여부도 빠뜨릴 수 없다. 결국 과감한 투자와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

미디어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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