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강경파는 386 아닌 47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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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3시 열린우리당 강경파 의원들이 주도하는 '240시간 의원총회장'.

'국가보안법 연내 폐지'란 커다란 문구가 벽에 붙은 이곳은 말이 의총장이지 내용은 농성장이다. 야당과 협상을 벌이고 있는 지도부에 강경책을 쓰도록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이날 문구 아래 쪽에 마련된 좌석엔 초선인 우원식.선병렬.이광철.김영주.노영민.이경숙.임종인 의원 등이 모여 앉아 여야 대표 협상 등을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이들은 475세대(1950년대생, 70대 학번)다. 475세대 외에 4선인 장영달 의원과 재선인 김태홍 의원이 함께했다. 이 자리에 386세대는 김형주 의원뿐이었다. 장 의원을 비롯해 우원식.임종인.선병렬.이광철 의원은 전날 이곳에서 철야 농성도 했다.

의총장 한 쪽에 마련된 칠판엔 "통일의 걸림돌 국가보안법 이제 너와 헤어지고 싶다"(유기홍 의원), "보안법, 이제 너 나가 있어"(유시민 의원), "나의 촛불, 우리의 눈물로 보안법 제거하자"(이경숙 의원)고 쓰인 자필 문구도 보였다. 이 글을 쓴 이들도 475세대다.

지난 총선 이후 열린우리당 강경파는 386세대로 상징됐다. 하지만 최근 열린우리당 내 강경파는 475 이전 세대가 거의 점령하다시피 했다. 지난 20일 시작한 '240시간 의총'을 주도하고 있는 면면이 이를 대변한다. 특히 중진급의 장영달.신계륜, 개혁당 그룹의 유시민.유기홍, 475세대 모임인 아침이슬의 우원식.노영민.선병렬, 재야파의 문학진 의원 등이 최근 기류를 주도하고 있다. 반면 386의원들은 신중론을 내세우는 편이다. 전대협 출신인 우상호 의원은 전날 의총에서 "지도부가 협상을 하는데 전략을 내보이면 안 된다"며 "지도부에 일임하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송영길 의원과 전대협 출신인 임종석.오영식 의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청와대 출신 386인 이광재.서갑원.백원우 의원 등은 이미 실용 노선을 강조한 지 오래다.

당내에선 386의원들이 적극 나서지 않는 이유를 두 가지로 꼽는다. 우선 그들이 강경 노선을 펴면 여론의 표적이 된다는 우려 때문이다. 또 386의원들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감각이 유연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면 강경 목소리를 내는 475의원들은 386세대보다 오랫동안 억압된 정치 현실에서 지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보안법에 대한 반발이 크다고 지적한다. 여기에 선명한 개혁을 주장하는 지지층도 의식하고 있다는 평가다. 한 당 관계자는 "최근 당내 강경파 475의원 중엔 초선들이 많지만 상대적으로 나서지 않는 386의원들은 낙선 경험이 있거나 재선인 경우가 많다"며 "이런 점도 세대별 차이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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