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한 먼로 얼굴 복원술이 올 아카데미 과학기술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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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해마다 3월 말이면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다. 올해도 주요 부문의 수상작들이 일찌감치 거론되면서 큰 관심을 끌었다.

특히 수학자를 모델로 한 영화 '뷰티풀 마인드'가 작품상 후보에 올라 과학자들의 관심이 예년에 비해 더 높았다.

영화 속에 그려지는 과학자들은 늘 강박장애나 편집증을 앓고 있는 괴짜가 대부분이라 섭섭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장면을 장식한 존 내쉬의 노벨상 수상 연설이 관객들에게 감동을 줬다면 그것으로 족한 일이리라.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사실 아카데미 시상식은 과학자들의 축제이기도 하다. 본상을 시상하기에 앞서 '아카데미 과학기술상'이란 것을 몇 주 전에 시상하기 때문이다.

1931년 제4회 아카데미상 때부터 시작된 이 시상식은 영화 발전에 기여한 과학기술의 발명 혹은 진전을 21개 부문으로 나눠 시상하고 있다.

수중 카메라를 이용해 처음으로 수중 장면을 연출했던 '007 썬더볼 작전'(1965)이 수상작이 됐고, 놀라운 컴퓨터 그래픽을 보여줬던 '어비스'(1989)와 '쥬라기 공원'(1993)도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영화 '스위트 노벰버'로 잘 알려진 여배우 샤를리즈 테론의 사회로 열린 올해 시상식은 수상작 중 하나가 구설에 오르면서 더욱 화제가 됐다.

'컬러필름의 복원기술'을 개발한 시네테크의 피터 큐란 박사가 수상했는데, 다른 전문가들은 이 기술이 그다지 새롭지 않다며 수상에 강한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영화 필름은 빨강·파랑·초록 빛을 흡수하는 감광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초기 컬러필름의 파란빛 감광층이 화학적으로 불안정해 시간이 흐를수록 영상이 푸른 색조를 띠는 단점이 있었다.

큐란 박사의 기술은 원래 필름을 이용해 새 흑백 필름에 파란빛을 쪼인 후 흑백필름과 원래 필름을 함께 겹쳐 새로운 영화필름을 만들었다. 그러자 파란 색이 원래 모습으로 복원됐다.

그는 이 기술로 '7년만의 외출'에 등장하는 마릴린 먼로의 얼굴을 생동감 넘치게 재현했다. 그 외에도 1백여 편 이상의 빛바랜 작품들을 복원하고 있다.

필름 전문가들은 큐란의 방법이 이미 10여년 간 사용돼 온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큐란 박사는 이 방법은 매우 간단할 뿐 아니라 가격도 저렴해 디지털 기술의 4분의1 가격으로 복원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결국 모든 것은 디지털로 보존될 것이다.

그러나 필름을 진정한 의미에서 '복원'했다는 점에서 큐란 박사의 기술도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과학기술이 마릴린 몬로의 섹시한 얼굴을 복원하는데 쓰일 줄 누가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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