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시작전권과 두 번의 잠수함 사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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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호 02면

1996년 9월 18일 강원도 동해시 연안에서 좌초한 북한 상어급 잠수함이 발견됐다. 북한군 특수부대가 침투해 25명이 자살하거나 사살되는 무장공비 사건이었다. 한국 사회에 전쟁 공포증이 번졌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연일 초강경 자세로 북한을 압박했다. ‘또 한 번 도발하면 전쟁’이라고 했다. 북한으로선 실패한 작전이었지만 우리 국민은 북한의 비정규전 위협을 새삼 실감했다. 당시 미국은 남북 대치가 거칠어지는 것을 만류하는 자세였다.

그럼에도 미국이 갖고 있는 전시작전권에 시비를 거는 여론은 없었다. 남남 전작권 갈등도 없었다. ‘남북 갈등보다 한·미 갈등이 더 컸다’고 니컬러스 크리스토프 당시 뉴욕 타임스 특파원은 썼다. (『두 개의 한국』, 돈 오버도퍼)

14년 뒤 북한 잠수함은 천안함 사건으로 또다시 도발했다. 이번엔 모든 게 달랐다. 전작권도 쟁점이 됐다. 한·미 정상은 27일 천안함 대응책 가운데 하나로 전작권 전환(2012년 4월 예정)을 유보키로 했다. 96년보다 더 험악해진 안보 상황을 감안할 때 당연한 조치다. 동시에 전작권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날 선 공방과 대립을 생각할 때 이것이 또다시 소모적인 국론 분열을 낳을 가능성을 우려한다.

천안함 사태는 국제합동조사를 통해 ‘북의 범죄’라는 게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우리 사회 일각에선 모든 것을 부정한다. 제1 야당도 그렇고, 좌파 성향의 시민단체들은 합조단의 전문적인 조사 내용을 비방하는 서한을 유엔에 보내 유족들은 물론 상식 있는 이들을 절망케 한다. ‘의견’의 탈을 쓴 잡설이 인터넷을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국론 갈등의 조짐은 전작권 전환 문제에서도 드러난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같은 단체는 25일 ‘한반도 평화에 역행하며 대미 군사 예속을 당연히 여기는 노예적 발상’이라고 비방했다. 천안함의 악몽 뒤에도 케케묵은 좌파의 논리는 재생산·재유통되고 있다. 반대쪽에 있는 보수도 걱정이다. 2006년 노무현 정부 때 보수 세력은 전작권 전환의 국제·정치적 배경엔 고개를 돌리고 ‘대역죄를 범한다’는 논리로 일관했다.

냉정해져야 한다. 전작권 전환이 대역죄가 아닌 것처럼 전환 연기도 노예적 발상이 아니다. 안보 상황이 달라졌을 뿐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전작권을 넘긴 것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7월이었다. 세계 최강의 미군에게 작전권을 넘겨 한·미 군사동맹 효과를 극대화하자는 취지였다. 그것이 냉전 시대 북의 도발을 억제하는 버팀목이었다. 94년 평시작전권이 넘어왔지만 두 번의 잠수함 사태에서 보듯 북한의 위협은 엄연한 현실이다.

전작권 전환의 가장 큰 문제는 방법과 시기다. 중앙일보가 군 개혁 시리즈에서 지적하듯 우리 군의 대북 억지력에는 부족한 게 많다. 전작권을 넘겨받는 것은 신중하게 결정돼야 한다. 안보 분야에 ‘자주’라는 명분만 들이대다간 훨씬 더 큰 대가를 치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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