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주는 아동문학 치열한 삶서 나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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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국내 아동서의 한 축을 담당해온 창비아동문고가 1977년 2월 첫 책을 낸 이래 25년 만에 시리즈 2백권째 책을 냈다. 1번 책이 한국아동문학계의 봉우리 이원수 선생의 동화집 『꼬마 옥이』였다는 것을 생각할 때 현재 활동 중인 중진·신인 작가들로부터 신작동화를 받아 기념선집 형태로 출간한 200번 책의 표제작이 권정생 선생의 저학년용 동화 '또야 너구리의 심부름'인 것은 적절한 예우다. 그야말로 81년 이원수 선생 타계 이후 권정생 선생이 아동문학 평론가 이오덕 선생과 함께 아동문학의 두 기둥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올 초에 출간된 아동문학평론집 『숲에서 어린이에게 길을 묻다』(창작과비평사)에서 저자인 춘천교육대 김상욱 교수(국어교육과)는 '낮은 곳에서의 흐느낌'이란 제목의 권정생론을 싣고 있다. 그의 삶이 그대로 묻어나 있는 사진 한 장의 묘사로 시작되는 이 글은 '아동문학계의 성자'로 불리는 작가에 대한 후진들의 존경을 한 눈에 보여준다.

"문고리 달린 여닫이 방문 앞 댓돌 아래에는 스테인리스 개밥 그릇이 외따로 놓여 있고, 탁자 위에는 부엌살림이 올려 있다. 바가지며 반찬통이 위태롭게 동개져 있는 것으로 혼자 견디는 살림의 쓸쓸함을 엿보게도 해준다.… 선생의 검정고무신 밖으로 삐죽이 드러난 발은 시린 맨발이다. 입을 꾹 다물고, 순한 얼굴로 망연하게 앞을 내다보며 앉아 있다.… 그런데 조촐한 한 노인을 담고 있는 그 흑백사진 앞에서 나는 자꾸만 숙연해졌다. 요즘과 같은 자본의 시대, 소비의 시대, 상품의 시대에 맞서는 가장 단단한 삶이 바로 이런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1백66~1백67쪽)

그의 등단작이기도 한 단편동화 『강아지 똥』을 처음 읽었을 때의 감동이 떠오른다. "돌이네 흰둥이가 누고 간 똥입니다. 흰둥이는 아직 어린 강아지였기 때문에 강아지똥이 되겠습니다"라는 재미난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동화는 '태어나면서부터' 천대받은 강아지똥이 온몸에 비를 맞아 잘게 부서져 땅에 스며든 뒤 거름이 돼 마침내 민들레꽃으로 피어난다는 이야기다.

또 해방 이후부터 6·25 직후까지를 다룬 장편소년소설 『몽실 언니』는 TV드라마로도 만들어져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84년 첫 출간된 이래 지금까지 60여만권이 팔린 창비아동문고 최고의 베스트셀러이기도 하다.

이 땅의 모든 생명을 보듬어 안는 그의 작품세계는 인생 역정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아홉살 때 경북 안동 고향집으로 돌아온 그의 삶은 가난과 병마로 얽혀 있다.

고향마을 교회에서 종지기로 일하면서 69년 '강아지똥'으로 늦깎이 등단을 한 뒤 그는 지금까지 교회당 뒤편의 작은 흙집에서 투병생활을 하며 꾸준히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다. 아동출판이 전례없이 활발한 요즘,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새로 출간된 창작동화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같이 재미와 문학성, 진정성을 두루 갖춘 작품들을 만나기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시대적 감각의 변화 탓으로 돌려야 할까. 작가들의 치열한 정신이 모자란 것은 아닐까.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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