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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특별 메시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5일 어린이날을 맞아 『몽실언니』『강아지똥』『한티재 하늘』 등의 작가 권정생씨의 특별 메시지를 싣습니다. 주류 사회에서 비켜선 채 경남 안동 시골마을의 흙집에서 사는 그는 문학의 위엄을 증언하는 아동문학계의 어른입니다. 그는 이 메시지에서 '더불어 즐기는' 어린이날의 의미를 어눌한 말투로 전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날이 왔다고 신문에다 한 소리 하랍니다. 해마다 어린이날은 이렇게 글 쓰는 사람을 글 쓰게 만들고, 이곳 저곳 갖가지 행사로 떠들썩하겠지요. 백화점과 음식점·놀이공원에서는 어린이를 상대로 한몫 챙기느라 바쁘겠고, 어머니·아버지들 역시 아이들을 위해 그 동안 준비해뒀던 목돈을 아낌없이 쓸테고요. 이것도 저것도 못하는 집에서는 어린이날이 오히려 없었으면 싶을 만큼 침통한 날이 되기도 하고요. 어쩌지요? 우리 모두 들뜬 마음을 조금만 가라앉히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아프가니스탄에서, 팔레스타인에서, 세계 여기 저기에서 전쟁과 가난으로 눈물 흘리는 아이들을 어떻게 하지요? 그냥 모른 척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왜 즐거운 어린이날, 1년에 단 하루밖에 없는 날 그런 청승맞은 생각을 해야 하느냐고 투덜댈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 세상 모두가 남이 아닌 이웃이니까요. 한 텔레비전 명화극장에서 본 네살배기 포네트 생각이 나네요.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은 포네트를 위해 같은 또래 아이들이 서로 달래고 어르며 슬픔을 극복해 나가더군요. 원래 어린이날은 하룻동안 그냥 실컷 먹고 마시고 즐기는 날이 아니잖습니까. 방정환 선생님 생각은 절대 그게 아니었을 겁니다. 씩씩하고 용기있는 어린이도 좋지만 가장 소중한 것은 이웃에 슬픈 일이 생기면 함께 조용히 그 슬픔을 나누는 어린이가 돼야 합니다.

이번 어린이날은 그냥 흥청대는 날이 아닌 알찬 하루가 되도록 하세요. 어떻게 하느냐고요? 맞습니다. 어렵고 막막할 것입니다. 우선 부모님께 여쭈어 보세요. 그리고 학교 선생님과 함께 의논하세요. 도와주실 것입니다. 15명까지의 남북 어린이를 모두 합치면 1천5백만명이나 됩니다. 가까운 일본 어린이는 그 갑절인 3천만명이 될테고 중국 어린이는 4억명이 넘을 것입니다.

아시아 어린이, 유럽·아프리카 어린이, 그리고 북미·남미 어린이와 함께 의논하세요. 어떻게 의논하느냐고 또 묻겠지요. 방법은 여러분들이 생각하세요. 다시는 이 세상에 전쟁으로 눈물을 흘려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다음 어린이날은 세계의 모든 어린이가 함께 떳떳하게 즐기는 명절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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