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아 힘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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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동국이 탈락했다.

산모가 모진 고통 속에 애를 낳듯 한국의 월드컵 최종엔트리 23명의 명단이 온 국민의 높은 관심 끝에 발표됐다. 국민의 염원을 실어 한국축구를 16강에 올려 놓을 태극 전사들이다.

누가 포함됐나 궁금하기에 앞서 필자는 이동국이 엔트리에 빠졌다는 것에 마음이 쏠렸다. 왜 그랬을까.

이동국의 탈락은 그를 아끼는 팬들에게는 충격이었다. 포철공고 시절 최정민·이회택·최순호·황선홍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스트라이커의 대를 이을 대형 선수로 자타가 인정했던 이동국. 1m85㎝의 장신에 한국 선수들이 갖기 어려운 유연성과 개인기, 대포알 같은 슈팅을 앞세운 득점력을 갖춰 축구계를 흥분시켰던 '천재'가 이동국이었다.

이동국의 추락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청소년대표·1998월드컵대표를 거치는 과정에서 이동국은 늘 여학생들의 우상이었으며 젊은 팬들의 희망이었다.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에 0-5로 참패하고, 차범근 감독이 경질되는 등 참담한 축구계 분위기에서 그래도 축구인들은 이동국·고종수라는 새로운 천재를 얻은 기쁨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이 기대는 프랑스 월드컵 이후 국내 프로무대에 이동국·고종수·안정환의 트로이카 시대를 열며 연일 경기장은 팬들로 북적대는 기적을 일궈내기도 했다.

이동국은 무수한 '오빠부대'를 몰고 다녔고, 어린 나이에 최고의 스타 대접을 받았다. 불행히도 이런 분위기는 이동국에게 '독'이 됐다. 자신의 사생활을 통제하지 못한 이동국은 몸의 중심을 잃고 허둥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동국 추락의 책임은 물론 본인에게 있지만 더 엄중히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그를 사랑한 팬들이다.

그의 부진을 꼬집는 전문가들의 고언에 그의 팬들은 늘 일방적인 비호를 했고, 고언을 한 전문가에게 사이버 테러까지 서슴지 않는, 잘못된 사랑을 보였다.

'스타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필자는 굳게 믿고 있다.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부모를 비롯한 가족의 역할도 소중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팬들의 올바른 사랑이다.

이동국은 아직 앞날이 창창한 23세의 젊은 나이다. 이 시련을 딛고 그가 보란 듯이 재기할 수 있도록 그의 팬들은 도와야 한다. 시름에 빠지지 않도록 격려해줘야 하고, 오기에 찬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때에 따라서는 꾸지람도 해야 한다. 그것이 성숙한 사랑이다.

이동국에 대한 팬들의 올바른 사랑 실천은 한국 축구의 스타와 팬클럽의 올바른 관계 설정의 모델로 발전할 수 있고, 이는 한국 축구 문화의 새로운 활력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국아, 청춘은 짧다. 한동안 방황할 때처럼 술먹지 말고, 차범근 선배처럼 성실한 선수로 거듭나라."

지난해 독일 브레멘 임대선수로 출국하던 이동국을 배웅나가 출국장에서 했던 얘기다. 지금도 똑같은 심정이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기를 진정으로 기원한다.

<중앙일보 축구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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