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옷 입은 5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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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아름다운 5월이다. 온통 신록이고, 산천에는 꽃들이 피어 있다. 가뭄 끝에 적절히 내린 비는 신록을 새삼 아름답게 꾸며주었다. 봄은 언제나 이처럼 아름다웠을 것이다. 그러나 나무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우리의 인식에 최근 한 가지 덧붙여진 것이 있다. 그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만이 갖는 특권일 것이다. 나무의 속 깊숙이 숨어 있는 유전정보와 내 몸 깊숙이 숨어 있는 유전정보의 90% 이상이 서로 같다는 놀라운 소식이 그것이다.

생명체 유전정보는 비슷

나무와 내가 열 손가락에서 아홉이 같고 그 나머지 하나도 비슷하다고 한다면 나무와 나는 더할 수 없이 가까운 친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원시사회로 돌아가 말한다면, 그 관계는 이웃 마을에 사는 부족으로서의 친구가 아니라 옆집에 사는 씨족으로서의 친척일 것이다. 인간과 나무가 그처럼 가깝다면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고릴라는 우리와 형제인 셈이다. 이제 우리는 세균에 감염돼 병을 앓고 난 다음 "먼 친척이 쳐들어와 고생 좀 했다"고 말해야 할 형편이 된 것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유전정보가 우리와 비슷하다는 놀라운 발견은 생명체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근원적으로 바꾸게 될 것이다. 이제 그 변화가 시작됐다. 환경에 대한 우리의 태도도 이 사실에 바탕을 둬야 한다. 자연은 우리가 먹어야 할 음식으로서 보존돼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입고 있는 옷으로서 상처를 입혀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흔한 말로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의 집, 다르게 말해 내 피부라고 생각해야 한다.

운전석에 앉아 담배꽁초를 밖으로 버리는 사람들은 도시의 환경을 망망대해쯤으로 생각한다. 버려서 무슨 표가 나겠느냐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벌금을 무겁게 물려 봐야 소용이 없다. 그 방법으로는 망망대해라는 그의 생각을 고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랑스의 파리 시는 담배꽁초를 아예 길거리에 버리라고 홍보한다. 구석진 곳에 몰래 버려 화재를 일으키기보다 아예 길가에 버려주면 국가가 치우겠다는 것이다. 치울 사람을 분명히 한다는 점에서 올바른 정책이다.

도시를 망망대해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 생각이 잘못됐음을 가르쳐야 한다. 벌금을 물리기보다 인식을 전환시켜야 하는 것이다. 경찰관에게 걸려 벌금을 물게 된 사람은 "하루하루 살기도 힘든데,담배꽁초 한번 버렸다고 하루 벌이를 빼앗아 가다니…"하며 정부를 저주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아무 것도 고쳐지지 않는다.

환경은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됐다. 고려시대에 살던 한 사람이 살아 나와 비행기를 타고 옛날과 다른 한국의 산하를 내려다 본다면 "오메, 큰일 났네…"하며 "어찌하다 이렇게까지 되었을까"하고 눈물을 흘릴 것이다.

벌금으로 자연보호 될까

그러나 어찌하랴. "2002 월드컵은 온 국민이 대표선수"라는 표어를 걸 듯 민도가 높다고 국민을 한껏 치켜올린 다음, 그 환상 아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사소한 위반에 대한 엄청난 벌금 부과는 민도가 높다는 환상에 근거하는 해결책이다. 민도가 낮은 국민임을 자인하고, 그렇지만 함께 힘을 모아 고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문제는 선진국이라는 환상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인식이다. 이제 우리의 산과 강, 그리고 대기는 무엇이든 버리는 것을 흔적없이 감춰주는 망망대해가 아니게 됐다.

천문학자들은 아름다운 이 지구도 몇 10억년 후엔 태양과 함께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긴 시간이지만 영원은 아니다. 아름다운 5월의 자연 역시 영원하지 않으며 상처받을 수 있는 연약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화두의 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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