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 "시인은 시로 말해야" 金 "左든 右든 가짜 많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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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너무 큰 작품을 쓰려 한 게 무리야. 대작에는 관심을 가지지 말고. 서정시가 제일 본령이야. 나는 시인은 어떤 상상적 발언도 시로 하는 게 정도라고 생각해."(조동일)

"'모심'이 부족했어. 내가 나를 아끼지 못하고 갈 길을 모르고 이리저리 함부로 살아왔다는 뜻이야. 환갑이 지나서 정리할 때가 되었어. 내가 그림을 좋아하니까 그림 그리고 시 쓰고 그래야지. 많이 써야겠어."(김지하)

시인 김지하(61)씨에게 시에 관해 '충고'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서울대 조동일(63·국문학)교수다. 김씨의 정지용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다음주 출간되는 시전문 계간지 『시와 시학』이 둘의 대담을 마련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천재 예술가" "대이론가"라 칭하며 대학생 시절인 4·19때의 경험담에서 문학과 철학의 관계, 상극론과 상생론 등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 정신사와 예술사의 최전선에 섰던 내용들을 말했다.

두 사람은 자주 만나 얘기와 술을 나누는 관계는 아니지만 서로를 학문과 창작의 사형(師兄)으로 인정하며 40년 우정을 간직했고 이번에 첫 공식 대담을 가졌다.

학문과 문학의 세계에서 일가를 이룬 두 사람이 거침없이 토해내는 밀도 높은 말들은 시대정신의 정수를 보여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4·19 혁명 당시의 이야기가 우선 눈길을 끈다.

"뚜렷한 이념도 없고 지도자도 없는 모습이어서 난 처음에 방관자로 있었다. 그러나 모든 시민들이 궐기하는 모습을 보고 곧 후회했다. '오라 남으로 가자 북으로'라는 그 유명한 민족 심포지엄을 조동일이 기획했고 이때부터 내가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돌이켜 보면 우든 좌든 사실상 가짜가 더 많고 진짜들도 뿌리 깊은 고심이 부족해."(김지하)

"이념도 지도노선도 없다는 게 오늘날까지 계속이야. 좌를 택한 사람도 있고 우를 택한 사람도 있어. 우를 택한 사람들은 뒤에 유정회 국회의원이다 뭐다 하면서 박정희 정권 하에서 다 녹아내렸지. 좌를 택한 사람은 실컷 고생하다가 다 그만뒀다구."(조동일)

4·19 주동자란 이유로 오랫동안 정권의 사찰을 받아오던 조교수는 "일체 사귀지 말자. 나는 철저히 나 혼자다. 뿌리까지 들어가서, 고전으로 들어가서, 철저하게 남하고 안 만나고 혼자 칩거하며 학문의 세계로 들어가야겠다. 이게 내가 살 길이고 갈 길이다"라고 생각하게 됐다.

김씨는 감옥생활 중에 시멘트와 창살 틈에 피어난 풀을 보고 세 시간이나 울고 난 뒤 "일종의 초기 정신병을 앓으며 사람의 내면이라는 게 얼마나 복잡하고 기이한 건지 겨우 알았어. 그 이전엔 인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고밖에 말 못하겠어"라고 말했다.

이후 이야기는 "요즘 사람들이 상생만 자꾸 얘기하는데 상극이 있으므로 상생이 있는 것""문학과 철학을 통합하는 일이 세계사적 과제"라는 등의 주제로 나아갔다.

김씨는 "요새 나오는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통합은 조동일이 이미 40년 전에 생각하던 주제였을 정도"라며 "내가 장자나 동학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그 친구 도움이 크다"고 말했다.

이 대담 이후 마음이 편해졌다는 김씨는 곧바로 시 열세 편을 써 곧 발간될 『문학동네』 여름호에 게재했다.

또 시집 『중심의 괴로움』(1994)을 펴낼 당시의 미발표 시 1백여 편의 원고를 정리해 다음달 실천문학사에서 시집을 낸다. 이 원고를 분실한 줄 알고 있던 김씨는 최근 원고더미를 정리하다 발견했다고 한다.

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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