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피해자의 3重苦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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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C양은 중소기업체인 A회사에서 경리담당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IMF 이후 극심한 취직난을 뚫고 취업한 기쁨에 그녀는 남보다 열심히 일했다. 어느 날 밤늦게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던 그에게 갑자기 사장이 다가와 얼굴에 키스했다. 이후 사장은 그녀에게 'O양의 비디오'를 보라고 주는가 하면 안아달라, 뽀뽀해달라며 치근거렸다. 성관계를 가지면 5천만원을 주겠다고도 했다.

견디다 못한 그녀는 직장을 그만두고 여성부에 제소했다. 여성부에서는 사장의 행위가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그녀에게 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하도록 결정했다.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성희롱 예방교육이 덜 된 탓도 있지만, 아직까지 남녀평등의식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까닭이다.

직장생활을 막 시작한 철부지 여직원이 서서히 그리고 징글맞게 접근해오는 사장의 마수로부터 벗어나려고 발버둥칠 때의 참담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생존수단인 직장을 그만둬야 할지 모르므로 함부로 성희롱사태를 문제시 하기도 어렵다. 자칫 잘못하면 직장에서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 이런 고민을 하는 동안 가해자는 성희롱을 당연하게 여기고 점차 강도를 높인다. 성희롱 피해자를 바라보는 주변사람들의 시각도 곱지만은 않다. 처음부터 단호하게 뿌리쳤어야 하지 않았느냐, 왜 거부의사를 명확하게 표시하지 않았느냐며.

그러나 직장 내 성희롱이란 직위나 업무를 이용해서 성적인 언동을 하는 것이 본질이기 때문에 갑작스런 성희롱 행위에 대해 즉각 뿌리치기가 어렵다. 상사의 체면과 명예를 송두리째 무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약점을 이용해서 상사는 단둘이 술을 마시자느니 하면서 이상한 분위기로 이끌어 간다. 그리고 갑자기 손을 잡거나 키스를 하는 것이다.

시간이 흐른 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성희롱 피해를 제소하지만 정작 증거 불충분으로 곤란을 겪기도 한다. 성희롱은 대부분 두사람만이 있는 상황에서 행해지므로 가해자가 부인하면 피해자의 일방적인 진술만으로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여성부 남녀차별개선위원회에서 성희롱 사건을 심의하다 보면 각자 주장이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인 여성은 가해자가 성희롱적 말과 행동을 했다며 입증자료를 제출하지 만 물적 증거보다 직장 동료의 진술이 대부분이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주장이 전혀 사실과 다른 모략이라든가, 아니면 자신의 언동이 친근감의 표시였을 뿐 성희롱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주장한다. 성희롱을 문제삼는 여직원은 대부분 퇴사해 동료직원들도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편에 서서 애매모호한 진술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사안을 정확히 조사하기 어렵다. 피해자는 믿었던 상사로부터 성희롱을 당해 직장을 그만두게 되고 정신적으로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볼 뿐 아니라, 주변 동료에 대한 배신감까지 느끼는 3중고를 겪는다.

우리 사회가 건전한 사회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보호 및 배려차원이 아니라 남성과 더불어 대등한 사회의 한 축으로서 여성이 당당하게 설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랜 사회의식과 관행 속에 자리한 남녀차별의식을 없애는 노력부터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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