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살아난 '불사조'아라파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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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일 저녁, 황혼이 깔린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시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청사건물. 다섯달 동안 건물을 에워싸온 이스라엘군 장갑차·트럭 10여대가 차례차례 철수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장갑차가 청사 밖으로 사라지자 퀭한 눈매에 성난 눈초리를 한 노인이 창가에 모습을 드러냈다. 청사 앞에 모여있던 팔레스타인인 1백여명은 일제히 환성을 지르며 공포를 쏘아댔다."아라파트! 아라파트!"

그러나 노인은 환호를 무시한 채 주먹을 불끈 쥐고 "이스라엘은 테러분자, 나치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란 욕설을 퍼부어댔다.

반세기 넘게 이스라엘과 싸워온 '부도옹(不倒翁)' 야세르 아라파트(73)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또 한번 절체절명의 사선(死線)을 넘어 화려하게 복귀했다. 5개월간 그를 청사건물에 가두고 협박해온 이스라엘군이 자진 철수함으로써 마침내 자유를 되찾은 것이다.

아라파트는 연금기간 중 죽다 살아났다. 이스라엘은 포위 4개월째인 지난 3월 29일 그를 '적'으로 규정하고 무장군인들을 아라파트 코 앞까지 진입시켜 총격전을 벌였다.'독안에 든 쥐' 신세가 된 그는 빵 1만3천개, 쌀 1백kg 등의 식량을 반입해 청사 안에 함께 갇힌 3백여 추종자들과 쪼개 먹으며 연명했다. 식량 공급이 불규칙해 어떤 날은 감자 한덩이, 빵 몇조각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물과 전기가 끊어진 집무실에서 그는 촛불만 켠 채로 쉴 새 없이 외신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각국 정상들과 통화하며 이스라엘 공격의 부당성을 역설했다. 그 결연한 모습에 팔레스타인인들은 환호했고 미국 등 국제사회도 그가 팔레스타인의 대표자임을 재확인했다."아라파트를 20년 전 죽이지 못한 게 한"이라던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도 결국 그를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연금되기 전보다 훨씬 높아진 지지율과 국제사회의 인정 속에 더욱 강력한 지도자로 복귀, 또 한번 '불사조'임을 입증했다.'불사조'는 50년 넘는 독립투쟁 인생에서 위기를 맞을 때마다 특유의 뚝심으로 정면돌파해 살아남은 아라파트에게 서방언론이 붙여준 별명이다.

하지만 그의 앞길은 산 넘어 산이다. 그의 해금에 결정적 역할을 한 미국은 "앞으로 테러전술을 버리지 않으면 두번 다시 도와줄 수 없다"고 못박았다. 숙적 샤론은 "아라파트가 이스라엘 밖으로 여행할 경우 귀환을 보장 못한다""추가테러가 발생하면 언제든 다시 연금할 것"이라고 벼르고 있다.

아라파트는 우선 한달 넘게 계속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베들레헴 예수탄생교회 포위부터 풀어야 한다.

또 조속히 휴전협상을 타결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의 초석을 닦아야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와해된 정부·군조직과 기반시설을 복구해야 하는 데다 더욱 강경해진 민병대 세력들을 다독여 협상에 참여시켜야 하는 어려움을 안고 있다. 그가 진짜 '불사조'인지 알 수 있는 것은 이제부터다.

강찬호 기자

아라파트 항전 일지

▶2001년 12월 3일=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자폭공격 후 아라파트 집무실 봉쇄

▶2002년 1월 18일=이스라엘 탱크·장갑차, 한때 집무실 구내 진입

▶3월 6일=이스라엘 헬기, 아라파트 집무실에 미사일 공격

▶26일=아라파트, 아랍정상회담 불참 결정

▶29일=이스라엘, 아라파트 '적'으로 규정

▶4월 2일=아라파트, 샤론 총리의 망명제안에 "차라리 죽겠다"고 선언

▶14일=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 아라파트와 회담

▶5월 1일=팔 테러용의자 6명 감옥에 이송, 아라파트 연금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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