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묘목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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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윤의섭(1968~ ), 「묘목들」 전문

줄지어 심어진 묘목은 아직 숲이 아니어서
훤히 뼈대가 들여다보인다
살이 채 붙지 않은 태아의 뼈대다
작은 나무에서는 작은 바람이 나온다
묘목 사이 바람은 어리다
한 칸을 건너뛰고 다시 가는 허리를 잡고 돌아
숨을 몰아쉬며 쫓고 쫓기는 놀이에
묘목밭 끝에 이르러서는 숨 끊어지고 만다
하루종일 고양이가 질주했고
얼마 전에는 사람 손을 탄 제 새끼들을 물어 죽여
썩어버린 몸뚱이 웅크리고 엎드린 채 발견되었다
묘목들 사이에서는 모든 움직이던 것이 거름으로 쓰였다
묘목들은 서로 키가 비슷했다
세월이 흐르면 하나씩 옮겨져 큰 바람 살려내는 숲이 되고,
저 오래된 밑동에 어린 나날의 희디흰 뼈를 묻을 때까지
묘목들은 지금 어떤 뿌리를 얽매놓고 살아 있는가
비쩍비쩍 서로 마른다
살아남기 위해 지금은
가능한 생장점의 높이를 서로 맞춰놓아야 했다



어린 나무는 하루 종일 흔들며 놀아주는 작은 장난꾸러기 바람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하룻밤이면 어린 나무를 얼어죽일 만한 무시무시한 바람도 기다리고 있다. 추위나 굶주림, 병 따위 태고부터 내려오는 자연은 공격 대상이 크고 작고를 가리지 않는다. 어린 것들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은 어미의 사랑과 보호본능을 자극하여 제 생명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생존 본능인 것.

김기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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