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지원 없다" 채권단 단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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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하이닉스 이사회가 매각안을 거부함으로써 하이닉스는 다시 원점에 서게 됐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하이닉스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져 해외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를 경계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채권단도 추가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와 채권단이 모두 등을 돌린 가운데 하이닉스는 "독자 생존을 강구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돈이 물린 채 상당 기간 계속 쏟아부어야 하는 독자 생존 방안보다 법정관리 및 청산 방안이 더욱 현실적이라는 지적이 강하다.

◇법정관리·청산=채권단 일각에서는 강력한 채권 회수를 주장한다. 이렇게 되면 부도가 불가피하고 결국 법원에 회사정리 절차를 신청하게 된다.

법원은 회생가치와 청산 가치를 판단하게 된다. 법원이 회생을 결정하더라도 주주는 감자, 채권단은 부채 탕감이 불가피하다. 법정관리가 되면 채무가 동결되지만 추가 투자 재원 마련은 힘들어진다. 반도체 산업 특성상 추가 투자가 없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이런 점에서 제3자 매각 등 새 주인을 찾기 위한 단기적 법정관리가 대안이 될 수 있다.

가장 신속한 절차인 청산은 설비와 지적재산권 등을 모두 뜯어서 파는 방식이다. 이렇게 될 경우 핵심 반도체 인력의 중국·대만 등지로의 유출, 고용 불안정, 협력 업체의 연쇄 도산 등 파급되는 문제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지루하게 매각 협상을 끌어오면서 허비한 시간·비용·신용도 추락 등을 감안할 때 청산 가능성이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제3자 인수=업계·학계에서 최근 제기하는 삼성 역할론이 제3자 인수의 핵심이다. 삼성이 인수할 경우 세계 D램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면서 D램 지배력을 가질 수 있다는 이점이 거론된다. 그러나 삼성은 현재 상태로 최고의 이익을 내고 있고, D램 비중 축소라는 장기적인 반도체 전략과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난색을 표한다. 또 D램이 앞으로는 과거와 같은 '대박 상품'이 되기 힘들어 결국 생산단가 경쟁으로 갈 것이라는 점에서 생산량을 극적으로 높일 수 있는 12인치 웨이퍼 등 차세대 투자에 전력하고 있어 여력이 없다는 주장이다.

◇독자 생존=하이닉스 측은 30일 이사회에서 독자 생존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고 밝혔다. 이날 이사회에 참석했던 한 사외이사에 따르면 "반도체 가격이 2.5달러까지 떨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전제로 검토했다"며 "지난해 말 채무 재조정으로 올해 말까지는 상환 압력이 없어 신규 지원이 없어도 4천5백억원 정도의 여유 자금으로 신규 투자를 미루며 버틸 수 있다"고 말했다.

하이닉스는 독자 생존 방안으로 ▶2조원 탕감 또는 출자전환▶잔여 채권에 대해 1년간 이자를 유예▶2003년부터 5년 분할 상환을 해주면 부채 4조6천억원, 자본 6조5천억원으로 조정돼 충분히 생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방안은 적자를 간신히 면하는 임시방편이지 장기 생존책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양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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