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權魯甲 의혹' 투명수사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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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지검이 민주당 권노갑(權魯甲)전 고문을 전격 소환했다. 진승현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權 전 고문이 재작년 7월 陳씨측으로부터 5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드러났다는 것이 표면적인 소환 이유다.

權 전 고문은 김대중 대통령의 분신이라 불리는 최측근 인사다. 별다른 직책을 갖지 않았어도 정치적 영향력이 누구보다 막강했던 현실이 이를 입증한다. 그만큼 그의 전격 소환은 정치적·사회적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그는 각종 게이트마다 '여권 실세 K씨'라는 이니셜로 거의 빠짐없이 오르내렸다. 특혜·비리 의혹의 중심에는 그의 그림자가 자리잡기 일쑤였다. 이 때문에 그에 대한 조사는 이미 예고된 것과 다름없었다.

이제 관심은 權 전 고문 본인 수사보다 그의 갑작스러운 소환 배경이다. 특히 소환 발표와 동시에 혐의 사실을 미리 검찰이 단정하듯 밝힌 것은 비상식적이다. 또 1억원 받은 의원을 제쳐놓고 정치적 비중이 큰 그를 5천만원 수수 혐의로 먼저 부른 것도 이상하다. 당사자인 權 전 고문은 "벼락맞은 기분"이라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검찰 주변에선 이번 사건 수사가 검찰의 정치권 사정 신호탄이라는 전망과 함께 정치인 5~6명의 관련설이 나돌고 있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權 전 고문의 김근태·정동영 의원에 대한 최고위원 경선자금 지원의 위법성 수사가 동시에 진행되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한창 의혹의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대통령 아들의 비리 의혹에 대한 물타기 목적이라는 음모론적인 시각도 있다.

중요한 것은 검찰의 엄정한 수사 의지와 투명한 사건 처리다. 이런 때일수록 원칙과 정도(正道)를 지켜야 불필요한 오해를 없앨 수 있다. 특히 의혹이 거미줄처럼 복합적으로 얽힌 權 전 고문 비리 의혹의 경우 사건별로 수사할 게 아니라 전담 수사팀을 구성해 모든 혐의 사실을 한꺼번에 연계 수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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