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서해안 중심 니가타: 韓·中·러 연결하는 '열도 관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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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雪國)이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소설 『설국』의 너무나 유명한 첫 문장이다. 이 설국의 무대가 바로 니가타(新潟)다.

도대체 얼마나 눈이 많이 오기에 '설국'일까. 여주인공 고마코의 말을 들어보자.

"그래도 이틀이면 금방 여섯자는 쌓여요. 계속 쏟아지면 저 전봇대 전등이 눈 속에 파묻혀 버리죠. 당신 생각을 하며 걷다간 전깃줄에 목이 걸려 다치기 십상이에요."

일본에서 가장 맛있는 쌀 '고시히카리'의 생산지인 니가타는 1960년대까지 한적한 농촌이었다.

그러나 70년대 '풍운의 정객'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가 총리 시절 고향인 이 곳에 신칸센(新幹線)을 끌어왔다. 그는 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각종 공익사업을 추진했고, 니가타는 일본 서해안 최대 도시로 성장했다. '다나카 특수(特需)'에 이어 30년 만에 찾아온 '월드컵 특수'에 니가타 사람들은 설레고 있다.

일본에서의 월드컵 첫 경기(6월 1일·아일랜드-카메룬)가 벌어지는 니가타 경기장의 이름은 '빅 스완(big swan)'이다. 신칸센 니가타 역에서 버스로 15분쯤 달리면 거대한 도야노 호수가 나타나고 그 앞에 순백색 빅 스완이 솟아 있다. 시베리아에서 날아와 도야노 호수에서 겨울을 보내는 백조들의 날개 모양으로 지붕을 만들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스타디움을 배경으로 날아오르는 수천마리 백조의 군무는 니가타의 새 명물이 됐다.

축구 전용이 아닌 종합운동장이지만 니가타 스타디움은 예상 외로 그라운드가 가까워 보였다. 1층과 2층이 비스듬히 세워진 게 아니라 1층 바로 위에 2층 스탠드를 세웠기 때문이다. 곳곳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는 최대 66배 줌 기능이 있어 관람석 밑의 담배꽁초까지 잡아낼 정도다. 4층 높이인 콩코스(통로)에 서면 도야노 호수는 물론 멀리 바다까지 보인다.니가타현은 월드컵이 끝난 뒤 경기장 안에 '건강만들기 종합센터'와 '스포츠 의·과학센터'를 설치해 시민들의 건강 증진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경기장까지 연결되는 전철이 없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니가타시는 3백20대의 무료 셔틀버스를 준비했다. 사실 지난해 컨페더레이션스컵 당시 교통 체증으로 말들이 많았다. 관계자들은 "당시에도 1차전 때만 체증이 있었을 뿐 2,3차전은 문제가 없었다. 월드컵 때는 경기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승용차를 주차한 뒤 바로 셔틀버스를 타도록 하는 '파크 앤드 버스(park and bus)'를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6월 1일 일본 월드컵 개막전 식전행사에선 니가타 앞바다에 떠 있는 사도(佐渡)섬의 전통 북춤을 선보인다. 전통예술 단체인 '고도(鼓童)'회원 30여명이 지름 1m의 커다란 북을 두드려 원시의 울림을 만들어낸다.

니가타시는 스타디움 주위에 월드컵 파크 두 곳을 조성해 이 고장 특산품을 전시 판매하고 출전국 응원 코너, 전통 예능 공연장도 개설할 예정이다. 자원봉사자 1천8백명이 훈련을 마쳤고,이 중 1천2백명이 외국어가 가능하다고 한다.

일본의 월드컵 개최지 중 유일하게 서해안에 면한 니가타는 '동북아시아 신시대'의 주역이 되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 남북한과 중국, 여기에 러시아와 몽골까지 아우르는 경제벨트에서 교통과 물류의 축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니가타 시는 기반시설을 대폭 확충하고 있다.도시를 가로지르는 시나노가와(信濃川) 강 바닥 지하 27m에 총연장 3.2㎞의 터널을 뚫어 5월 중 개통식을 한다. 시 주변 지역을 흡수해 현재 52만명의 인구를 80만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곳 사람들은 "지도를 거꾸로 놓고 보면 일본의 중심은 도쿄(東京)가 아닌 니가타"라고 말한다.

니가타 월드컵추진국 상구 히로미 과장에게 니가타에서 가장 자랑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다. 뜻밖에도 "니가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씨"라는 대답이 돌아왔다.도심(都心)은 바뀌고 있지만 순박한 농심(農心)은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니가타=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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