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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기부문화] 치솟는'사랑 온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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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서 6년째 고물상을 하는 장형순(60)씨. 이달 초 고물을 팔아 모은 돈과 환갑 잔치 축의금을 합친 50만원을 강화군청에 기탁했다. "나보다 어려운 사람의 라면값으로라도 보태달라"는 당부와 함께. 100만원 안팎에 불과한 장씨의 한달 수입을 감안하면 50만원은 '큰돈'이다.

최근 기독교 대한감리회 충청연회가 충남 당진의 한 교회에서 마련한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교육'에 참가한 예산.당진 주민 57명 가운데 41명은 장기와 시신을 기증하기로 했다.

불황의 터널에 갇힌 2004년 겨울이지만 추위를 녹이는 인심은 어느 때보다 포근하다. 고물상에서 대기업까지 기부 참여자가 다양해졌다. 기부 내역도 현금 위주에서 남는 음식, 중고물품, 휴대전화 마일리지, 장기, 시신, 그림, 종신보험금 등으로 폭이 넓어졌고, 대기업을 중심으로 자원봉사와 결합한 새로운 기부 방식이 도입됐다.

서울시청 광장에 설치된 사랑의 체감온도탑의 19일 온도는 52.4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주관하는 연말연시(올해 12월 1일~내년 1월 31일) 불우이웃돕기 성금 모금 캠페인을 통해 들어온 돈이 목표치인 981억원의 52.4%를 달성했다는 뜻이다. 지난해 같은 무렵 19.3도의 2.7배에 해당한다.

공동모금회의 모금액은 2000년 510억원이었지만 올해는 1450억원 정도로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올해는 익명의 기부자가 많이 늘었다. 부산 서면에 설치된 구세군 자선냄비에는 15일 오후 50대로 보이는 남자가 2000만원 수표 한장을 냈다. 그는 수표 뒷면에 "뉴스가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라고 썼다.

자원봉사 참여자도 지난해 14만4623명으로 2002년(7만1521명)에 비해 두 배로 늘었다(보건복지부 통계).

새로운 기부방식도 등장했다. 지난 7월 경남의 한 중소도시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박모(35)씨의 종신보험금(1000만원)은 불우아동들에게 돌아갔다. 박씨가 아내(33) 몰래 수익자를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으로 지정한 보험에 들었기 때문이다. 김이남 화백은 지난 8월 서울대병원에 그림(3000만원 상당)을 한 점 내놨다.

하지만 선진국에 비해 개인 기부는 저조하다. 그나마 대부분 대형 재해 직후나 연말연시의 감성적인 분위기에서 이뤄지는 일회성 행사에 그치고 있다. 선진국처럼 기부가 연중 일상적으로 이뤄져야 하지만 낙후된 제도와 법규가 이를 가로막고 있다. 기부금을 낸 사람에 대해 소득공제를 해주는 비율(사회복지.종교단체 등을 대상으로 한 지정기부금 기준)만 해도 개인 10%, 법인 5%로 매우 낮다. 미국은 개인 50%, 법인 10%이며 일본은 개인.법인 모두 각각 25%, 캐나다는 각각 77%와 75%다.

우리나라의 기부금 액수는 선진국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지난해 미국의 기부금은 2410억달러로 국내총생산(GDP)의 2.8%를 차지했다. 우리의 경우 공동모금회.적십자사 등 14곳의 모금기관이 지난해 모은 돈은 4256억원으로 0.06%에 불과하다.

공동모금회 모금액 중에서 개인의 비중은 20%(미국 75%)에 지나지 않는다. 연말 불우이웃돕기나 수재의연금 등 일회성 행사 때 모은 돈이 대부분이다. 월급에서 매월 일정액을 떼는 선진국형 기부는 개인기부액의 2.2%에 지나지 않는다. 기부가 생활화돼 있지 않은 것이다.

시신 훼손을 터부시하는 관습 때문에 장기기증도 제자리 걸음이어서 생사의 기로에 선 6600여명이 애타게 기증을 기다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부를 활성화하기 위해 ▶모금 사전허가제를 폐지하고 ▶기부금 소득공제를 대폭 늘리며 ▶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사재를 기부하고 ▶초등학교에서 기부의 중요성을 교육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강철희 교수는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 등 노동계 지도부가 나서 월급여의 일정액을 기부하는 운동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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