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구속 피의자 조사 때 수갑·포승 안 채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지난 5월 사기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던 주부 김모(49)씨는 당시 포승과 수갑에 묶인 채 조사받았던 생각을 할 때마다 불쾌감을 지울 수 없다. 외부인들이 조사실에 들락거릴 때는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특히 변호사와 함께 조사실 근처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남편과 큰딸의 충격받은 모습을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하지만 앞으로는 중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김씨처럼 검찰 수사 과정에서 포승.수갑 등의 계구(戒具)에 묶여 조사받는 일은 없어지게 된다. 대검찰청은 19일 "내년 1월부터 강력범과 마약사범 등 죄질이 나쁘거나 도주 우려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구속 피의자들이 검사 앞에서 조사받을 때 수갑이나 포승 등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대검은 이를 위해 검사에게 피의자에 대해 계구를 사용할지에 대한 결정권을 주는 방향으로 법부무 훈령인 '계호근무준칙'을 개정해 달라고 법무부에 건의했다. 지금까지는 구속 피의자가 조사받을 때는 무조건 포승과 수갑을 사용해야 했다.

검찰은 우선 도주할 가능성이 작고, 폭행.자해 등의 우려가 없는 여성.소년.장애인 등 구속 피의자들에게 새 제도를 적용할 방침이다. 음주운전.무면허 등 교통사고 사범을 포함, 실수로 범죄를 저지른 과실범들에게도 수갑 등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이 같은 제도 개선으로 형이 확정되지 않은 피의자를 조사하면서 포승이나 수갑을 사용하는 데 따른 인권침해 시비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대한변협은 지난 1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됐던 재독 철학자 송두율씨 사건과 관련, "검찰이 계호근무준칙에 따라 포승과 수갑으로 송 교수를 묶어놓고 조사를 벌인 것은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었다.

달아나거나 다른 사람을 위협할 우려가 전혀 없는 송 교수와 같은 피의자에게도 조사 도중 계구를 사용하는 것은 헌법상 인간 존엄을 훼손할 뿐 아니라 '무죄 추정의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것이다.

변협은 또 행형법 시행령 제46조(계구의 종류별 사용요건 등)가 '포승과 수갑은 소요.폭행.도주 또는 자살의 우려가 있는 자와 호송 중의 수용자에게 사용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무분별한 계구 사용은 위법적 요소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조치는 지난 7월 학계.시민단체 등 외부 인사들이 참여해 발족한 '인권 존중을 위한 수사제도.관행 개선위원회'의 건의를 송광수 검찰총장이 수용해 이뤄진 것이다.

하재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