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스팽 변화 못해 몰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조스팽 총리의 정계은퇴 선언이 상징하는 프랑스 좌파의 몰락은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처럼 중도세력으로 지지기반을 넓히는 적극적인 변화를 모색하지 않아 일어난 '자업자득'이라고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가 23일 논평했다. 좌파 후보의 난립을 방치하고 좌파의 전통적 노선과 지지층에 안주하다 결국 낙마했다는 것이다.

◇변화 거부가 패인=조스팽이 의회 다수당 후보로서 결선에만 치중해 다른 후보들과 정책논쟁마저 회피하는 등 전통적인 좌파 지지층에 안주, 변화를 거부한 것이 결정적 패인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번 프랑스 대선에선 전통적 중도 좌파와 중도 우파 간의 정치적 논쟁은 진공 상태에 가까울 정도로 없었다"고 지적했다.

블레어 영국 총리가 "변하지 않으면 망한다"며 노동당의 개혁을 추진해 정치적 중도파의 지지를 얻는 데 성공한 반면 조스팽은 구좌파 노선에 안주하다 실패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반면 르펜은 범죄·불법이민·유로화·시장개방과 같은 민감한 문제에 대해 자국시장 보호·통합반대·불법이민자 추방 등 명확한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유권자들을 유혹했다. EU 회원국 중 둘째인 연평균 3.2%의 경제 성장률과 최저의 실업률 등 사회당 정부의 경제적 치적도 구태(舊態)에 실망한 프랑스인들의 표심을 돌려놓진 못했다.

◇"프랑스의 앨 고어"=폴 크루그먼 미국 MIT대 교수는 23일 뉴욕 타임스 칼럼에서 "2000년 미 대선에서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가 녹색당의 랠프 네이더 후보에 의해 파멸한 것처럼 조스팽도 좌파 후보의 난립 때문에 자멸했다"고 분석했다. 네이더는 전국적으론 3%의 표밖에 못 얻었지만 최대 격전지였던 플로리다에서 민주당 표를 크게 잠식, 97만표를 얻었다.

이번 프랑스 대선에서도 '좌파연합'에 속한 공산당과 녹색당 후보가 각각 4%와 5.5%의 득표율을 기록하고, 극좌파 트로츠키주의자인 아를레트 라기예 노동자투쟁당 당수(6%) 등 4명의 극좌파 후보가 13%를 얻어 좌파의 표가 분산됐다.

전체적으론 40%를 얻었지만 사분오열하는 바람에 좌파는 결국 결선에 후보도 못내는 참담한 결과를 빚었다.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득표한 후보가 없을 경우 1,2위 후보를 놓고 2차 결선투표를 하는 프랑스의 선거제도도 '좌·우 결선투표'를 당연한 것으로 예측한 유권자들의 표 분산을 부추기는 요인이 됐다.

정효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