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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단, 하이닉스 손털기 급급 매각대금 예상보다 줄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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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하이닉스 매각 협상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그러나 마이크론의 요구를 대부분 들어주면서 매각 금액이 당초 예상보다 크게 줄어들었다. 그나마 이달 말까지 양측 이사회 승인을 받지 못하면 합의 효력이 없어지는 조건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기 때문에 '최종' 타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사실상 백기 투항=하이닉스 채권단과 마이크론 사이에 체결된 양해각서(MOU)는 기존 협상 내용보다 채권단에 더 불리하다.

우선 매각 대금이 대폭 줄었다. 양측은 마이크론이 하이닉스 메모리 부문을 인수하는 대금을 마이크론 주식 1억8백60만주로 못박았다. 마이크론이 처음 주장한 대로 주당 가격을 35달러로 계산할 때 나오는 금액 38억달러를 기준으로 한 규모다. 지난달 협상에서는 MOU 체결 전 10일간의 평균 주가를 기준으로 하기로 했었던 점, 현재 마이크론 주가가 29.5달러인 점 등을 고려하면 채권단이 대폭 양보한 셈이다. 외신들은 이날 현재 주식가격을 기준으로 매각대금이 34억달러(잔존법인 투자분 2억달러 포함)라고 전했다.

채권단은 또 마이크론 코리아(메모리부문 신설법인)에 본사 보증 없이 15억달러를 대출해 주기로 합의했다.본사의 보증이 없으면 회수의 불확실성 때문에 대출할 수 없다는 채권단의 입장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인수·합병(M&A)으로 성장해온 마이크론의 노련한 협상기술에 힘 한번 못 써보고 손을 든 꼴"이라고 혹평했다.

◇다급했던 채권단=협상이 이처럼 불리하게 결정된 것은 채권단의 입장이 그만큼 다급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빛·외환은행을 비롯한 주요 채권은행은 처음부터 하이닉스의 독자생존 가능성은 없다고 공언해 왔다.

한 채권단 관계자는 "설비투자를 위해 매년 1조원씩 신규자금이 필요한데 하이닉스에 자금을 더 지원할 은행이 과연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독자생존이 불가능하다면 매각이나 청산 외에는 방법이 없는데 최근 마이크론이 도시바와 재협상에 나서자 채권단은 더욱 난처해진 것이다. 이 와중에 정부 일각에선 마이크론에의 매각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며 협상 타결을 다그치면서 협상팀의 입지를 좁혔다.

◇본계약 체결될까=MOU는 체결됐지만 최종 타결까지는 아직도 '산 넘어 산'이다. 우선 이달 말까지 양측 이사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하이닉스로서는 이사회 전에 채권단의 합의가 필요하다. 특히 투신권의 반발을 어떻게 무마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소액주주의 반발도 예상된다. 남은 채무를 모두 탕감한다고 해도 잔존법인의 매출 규모(1조원)에 비해 주식 수가 너무 많아(10억주) 감자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굿모닝증권 박정준 연구원은 "반도체시장에 대한 전망은 지난해 말보다 훨씬 좋아졌는데 가치 산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며 "2금융권과 소액주주, 잔존 법인에 대한 고려가 없어 계약이 성사될지 의문스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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