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 은막 여왕들과 시간데이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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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DVD 타이틀 출시 숫자가 비디오를 앞지른 현재, DVD 제작사는 시장 확대를 위해 고전 출시에도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최신작 중심의 영화관에서는 볼 수 없는 고전을 DVD로 편히 감상하는 것은 과거로의 시간여행이다. 특히 이 시간여행에 청춘기를 달뜨게 했던 추억의 여배우가 동행해 주면, 한동안 일손을 잡을 수 없다. 신화와 전설이 된 여배우 네명을 만나본다.

빼어난 각선미와 탁한 음성에 실린 히트곡 '릴리 마를렌'으로 일세를 풍미했던 마를렌 디트리히는 조셉 폰 스텐버그의 1934년 작 '진홍의 여왕(The Scarlet Empress)'(18세·스펙트럼)에서 만나볼 수 있다. 악명을 떨친 러시아 여황제 캐더린의 전반생을 그린 흑백 전기물로, 디트리히를 가장 아름답게 담아낸 영화. 소프트 포커스로 베일을 쓴 디트리히의 얼굴을 자주 클로즈 업 한다. 화려한 세트와 엄청난 출연진을 자랑하는 영화의 부록으로 BBC-TV가 제작한 스텐버그에 관한 다큐물이 들어있다.

'왕자와 무희(The Prince and the Showgirl)'(15세·워너)는 제작·감독·주연을 맡은 로런스 올리비에와 상대역 마릴린 먼로가 스캔들을 일으켰던 1957년 작이다. 영국 왕 대관식에 참석한 발칸의 가상 국가의 섭정과 쇼걸이 사랑에 빠진다는 코믹물. 꼭 끼는 이브닝 드레스 차림의 먼로는 셰익스피어 극의 최고 연기자 올리비에에게 밀리지 않는 연기력을 보여준다. 먼로에 관한 뉴스 필름이 들어있다.

빈센트 미넬리의 1957년 작 '디자이닝 우먼(Designing Woman)'(15세·워너) 역시 대조적인 남녀의 사랑을 그린 코믹 로맨스다. 그레고리 펙과 로렌 바콜이 각각 가난한 기자와 고급 의상 디자이너로 분했다. 바콜이 수시로 갈아입는 드레스를 디자인한 헬렌 로즈의 인터뷰가 들어있다.

리처드 퀸의 1964년 작 '뜨거운 포옹(Paris When it Sizzles)'(15세·패러마운트)은 오드리 헵번 주연작 중에선 가장 덜 알려진 작품이다. 파리를 무대로 게으른 시나리오 작가(윌리엄 홀든)와 상상력 풍부한 여비서가 사랑에 빠진다는 코믹 뮤지컬. 지방시 의상을 멋지게 소화해내는 헵번은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DVD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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