減産효과 큰 친환경농업 정부보조금 되레 줄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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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부는 쌀 대신 사료용 옥수수를 심으라고 하는데 그런다고 생산조정이 됩니까. 쌀의 과잉생산을 막고 쌀농업을 살리려면 고품질·친환경농업으로 유도해야 하는데 정부는 친환경농업 보조금을 오히려 줄이고 있습니다.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죠."

충남 홍성에서 유기농법으로 쌀농사를 짓고 있는 주형노(48)씨는 정부의 쌀산업종합대책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고교 졸업후 농약과 비료를 전혀 안쓰는 유기농업에 투신해 쌀농사에 관한한 '장인' 수준에 오른 사람이다. 주씨가 생산한 쌀은 40㎏에 12만5천원으로 일반쌀(8만원)보다 훨씬 비싸다. 쌀농업이 위기라고 하지만 친환경·고품질로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으면 충분히 살아날 수 있다는 게 주씨의 지론이다.

그러나 18일 내놓은 정부의 쌀산업대책은 이같은 방향과는 거리가 멀다. 우선 공공비축제나 소득보전직불제 같은 핵심적인 내용은 2004년 쌀개방 재협상 이후로 미뤄놓았다.

현재 추곡수매 예산은 쌀개방 재협상을 하게 되면 대폭적인 감축이 불가피하다. 지난해 카타르의 도하 각료회의에서 시장가격에 영향을 주는 보조금의 '실질적인 감축'이 합의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개방에 대비해 일본처럼 정부가 쌀을 시가로 사들여 시가로 방출하는 공공비축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해왔다. 그러나 농림부는 쌀개방 재협상 결과를 보고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쌀이 남아도는 상태에서 쌀값을 인위적으로 지지하는 추곡수매제를 축소하고 쌀값을 시장기능에 맡기는 공공비축제를 도입할 경우 쌀값이 떨어져 농민들의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쌀농사 소득 하락분의 70%는 정부가 부담하고 30%는 농민이 부담하는 소득보전직불제 도입도 쌀협상 이후로 밀렸다. 이 제도는 농민들이 일정액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보조금 지급에서 흔히 발생하는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농촌경제연구원이 도입을 건의했었다. 그러나 공청회 과정에서 농민단체들의 반대가 거세자 연기한 것이다.

고품질·친환경 쌀 생산을 유도한다면서 농민들에게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논농업 직불제 보조금은 늘어나는 대신 친환경농업 보조금 예산은 올해 오히려 줄었다. 친환경농업은 품질을 높이고 감산 효과가 커 앞으로 우리 쌀농업이 가야 할 방향이지만 정부의 지원은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 정책으로 과연 정부가 계획하는 쌀 감산이 이뤄질지도 의문이다. 농림부는 논에 콩·옥수수 등 다른 작물을 심을 경우 쌀농사 소득과의 차액을 보전해주는 전작보상제를 올해 도입했지만 신청자가 없어 원래 계획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농민들 입장에선 아직 쌀 외에 특별한 대체작물이 없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 민승규 수석연구원(전 양곡유통위원)은 "핵심적인 정책을 2004년 이후로 미뤄놓아 나중에 쌀시장이 개방되면 농민들의 충격은 더 커질 것"이라며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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