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중3교실의 살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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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마침내 수업을 진행 중인 중학 교실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학교 폭력에 대한 미온적인 대처가 빚은 엄청난 대가다. 어느 가정에서건 사랑스러운 자녀들일 이들이 서로 죽고, 죽임을 당하는 원한의 관계에 놓일 때까지 과연 우리 어른들은 무엇을 했을까.

학교 폭력 미온적인 대처

교실 뒷문으로 들어와 시험을 보고 있던 동급생을 아홉 차례나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뒤 경찰에 자수한 열네살의 소년은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너무나 평범한 학생이었다. 내성적이고 통제력이 부족해 흥분하면 걷잡을 수 없는 면이 있긴 했지만 단 한 차례도 학교로부터 징계를 받은 적도, 말썽을 일으킨 적도 없었다. 친구를 사귀는 교제범위가 비록 넓지는 않았지만 친한 친구가 거의 없는 외톨이도 아니었다. 4년 전 부모가 이혼한 이래 홀아버지 슬하에서 한살 위인 누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 주위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서울 중산층 가정의 아이였을 뿐이다.

이런 소년을 엄청난 살인의 광기로 내몬 것은 분노였다. "친구가 억울하게 맞는 것을 보고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자신에게 너무나 화가 났다"고 소년은 말한다.

소년의 운명을 '순한 학생'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살인자'로 비틀어버린 사건이 일어나기 1시간30분 전, 소년의 친구는 두명의 동급생들로부터 고분고분하지 않고 '갈군다'는 이유로 두어 차례 경고를 받은 뒤 몰매를 맞는다. 폭력을 당한 후 두통을 호소하던 소년의 친구는 양호교사에 의해 뇌의 이상 여부를 진단하기 위해 병원으로 보내졌다. 격분한 소년은 자신이 이들을 응징하기로 결정한다. 친구는 부모가 이혼할 즈음이던 초등학교 5학년 이래 줄곧 우정을 다져 오며 소년이 힘들 때마다 위로해주던 가장 절친한 단짝이었다.

흉기를 든 소년은 먼저 이날 친구를 때린 한 명을 찾아가 불러낸다. 그러나 소년은 "선생님이 찾는다"고만 말한 채 돌아선다. 대신 시험을 치르고 있던 동급생을 찾아간다. 그는 이날 사건과는 무관했다. 문제의 폭행학생들과 함께 어울려 지내는 그는 그간 점심시간에 선도부장을 밀치고 학교 밖으로 빠져 나간다거나 인터넷 게임인 리니지를 위해 다른 학생의 ID를 강제로 빼앗으려고 때린 것 등이 문제가 돼 학교에서 세 차례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 소년은 "평소 내 친구들을 그가 폭행해온 것에 불만을 품어왔다"고 말했다.

사건 이후 이 학교 인터넷 게시판에는 교내 폭력을 근절하지 못한 데 대한 분노를 담은 학생들의 글이 폭주했다.

많은 사람이 이 사건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충격이 큰 만큼 극히 비정상적인 범죄라고 믿고 싶어하는 어른들이 많은 듯하다. 과연 이 사건을 우리 사회에서 일어날 법하지 않은, 극히 예외적인 범죄라고 치부해 버릴 수 있을까. 나는 '소년이 품은 분노의 뿌리'를 보지 못하는, 아니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는 어른들의 이런 안일한 사고야말로 아직도 가능성이 무궁한 두 소년을 육체적으로, 사회적으로 마감시켜 버린 주범이라고 생각한다.

형사정책연구원의 '학교주변 폭력의 실태와 대책'(1997)에 따르면 폭력피해 학생들의 54.3%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있으며 고작해야 친구(34.3%)에게 털어놓고 있다.

호미로 막을 일 가래까지…

보복의 두려움 못지않게 문제해결에 대한 회의가 큰 까닭이다. 어른들을 불신한 채 피해를 안으로 곰삭인 10대들의 가슴은 분노로 떨고 있다. 이 속에서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르고 있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한 채 피해자도, 가해자도, 제3자도 희생되고 있다. 교실 살인사건이 보도되던 날 한 신문의 독자투고란에는 중학 교문에서 돈을 빼앗고 폭력을 일삼아도 학교에서는 형식적인 조사만 할 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사회의 관심도 지속적이지 않아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한 어머니의 애타는 절규가 상흔처럼 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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