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쌀 시장 완전개방 대비한 대책 나와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쌀 협상이 향후 10년 후 국내시장 개방을 현재(4%)의 약 두배로 확대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정부로서는 쌀 시장을 완전 개방(관세화)했다는 정치적 부담을 덜기 위해 국제 시세로 의무수입하는 물량을 늘리는 관세화 유예란 카드를 선택한 것이다.

완전 개방을 피함으로써 당장 부담은 덜었지만 파장은 결코 작지 않다. 국내 쌀 시장은 이제 사실상 완전경쟁의 직전 단계로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소비자들은 내년부터 할인점 등에서 외국산 쌀을 마음대로 사먹을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 수입 쌀은 가공용 등에 쓰였지만 이젠 소비자 밥상에 바로 오르게 된 것이다. 따라서 국내산이 경쟁력이 없을 경우 고가는 미국 쌀에, 저가는 중국 쌀에 시장을 빼앗길 가능성도 있다.

쌀 소비가 줄어 국내 생산으로도 재고가 쌓이는 판에 외국산 쌀을 매년 2만t씩 추가(올해 20만5000t 기준) 수입할 경우 이 재고의 처리도 심각한 고민거리가 된다. 게다가 국제 상황이 급변해 관세화 유예가 의미가 없다고 판단될 경우 바로 관세화로 전환키로 했기 때문에 쌀 시장 개방은 시간 문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민단체 등은 협상 결과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마저 쌀 시장을 완전히 연 터라 우리만 마음대로 닫아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나마 정부가 충격을 줄이기 위해 쌀값이 가마당 17만원 아래가 되면 차액의 80%를 보상키로 했으니 농민들도 서둘러 경쟁력 강화에 나서야 한다.

정부는 농업 부문에 향후 10년간 119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이후 지난 10년간 70조원 이상 쏟아붓고도 농업 경쟁력은 후퇴했고 농가 빚만 늘었다. 이는 정부와 농민 모두의 책임이다. 정부는 과거 전철을 밟지 않도록 더욱 치밀한 비전과 실행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정치권도 더 이상 농민을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자구 노력으로 고통을 분담하고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농민의 자성과 각오 없이는 우리 농업은 미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