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보다 예방 의료체제 바꿔야" 김일순 건강증진학회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0면

"사람들이 부러진 사다리를 오르다가 계속 떨어진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사다리를 먼저 수리하는 것이 원칙 아니겠어요. 하지만 우리의 의료체제는 망가진 사다리는 방치하고, 사다리에서 떨어지는 환자만을 치료하는 데 몰두하고 있어요."

대한건강증진학회 2대 회장에 취임한 김일순(65·사진)박사는 '국민 건강 수호천사'라는 별칭이 어울리는 예방의학 전문가다. 올 2월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을 정년 퇴임할 때까지 40년 가까이 이 분야에 헌신했다. 1988년 금연운동협의회를 설립, 14년째 회장을 맡아오며 흡연의 폐해를 국민에게 호소해왔다.

건강증진학회는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학술단체. 국민 건강을 위한 정책이나 계몽의 바탕 학문을 마련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가 지적하는 '사다리 이론'은 국민이 건강하면 삶의 질이 높아질 뿐 아니라 기업의 노동생산성, 건강보험 재정 절감 등 경제적인 이익까지 선순환의 고리를 탄다는 것. 하지만 개인은 물론 국가와 기업의 인식 부족은 여전하다.

"정부는 1년에 8백50억원을 치료의학 연구비로 투입합니다. 반면 건강증진 연구에 쓰는 돈은 15억원에 불과합니다. 이 점에선 가정이나 기업도 마찬가지지요."

그러나 이런 현상을 개선하는 것은 그리 간단치 않다.

"서구에서 위생을 통해 전염병을 예방하는 데 80년이 걸렸습니다." 그만큼 생활습관을 바꾸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

따라서 그는 국민의 행동 수정을 유도하는 데 국가가 나서야 하며, 어느 정도는 강제성이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선 보건소에 건강증진 기능을 부여하자고 그는 제안한다.

"보건소는 진료보다 지역민의 건강관리와 생활습관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입니다. 건강증진 프로그램을 운용하는 데 예산을 투입해야 합니다."

그는 건강보험의 개념도 바꿔야 한다고 역설한다. 올바른 생활습관과 운동으로 건강을 유지하는 사람이 흡연·과음 등 건강관리를 하지 않는 사람의 치료비를 부담하는 구조가 돼서는 안된다는 것.

따라서 그는 2년 재임기간 중 사회적으로 관심있는 이슈를 조명할 세미나를 수시로 열어 제도와 정책 조정을 유도하고, 국민의 건강 인식을 높이는 데 주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달 초 대통령 직속 의료발전특별위원회 위원장도 맡았다.

고종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