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쌓이면 돈도 쌓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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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매년 쌓이는 적자를 원망하던 은행들이 흑자로 돌아서면서 그동안 쌓인 적자(누적 적자) 덕을 톡톡히 보기 시작했다. 누적적자 때문에 세금을 아예 내지 않거나 절약하기 때문이다.

한빛은행은 지난해 7천1백29억원의 흑자를 냈으나 법인세를 한푼도 내지 않았다. 1997년부터 2000년까지 대규모 적자를 낸 탓이다. 한빛은 2005년까지 법인세를 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국민·신한·하나 등 흑자 기조를 이어온 우량은행을 제외한 제일·서울 등 대다수 시중은행이 누적적자 때문에 모두 1조원 이상의 세금을 아낀 것으로 추정된다. 법인세법상 적자가 나면 다음 5년까지 넘길 수 있게 돼있다.

쌓인 적자가 합병 촉매제 역할도 하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 관계자는 "우리금융지주회사가 평화은행과 합치면서 최대 8천억원을 벌었다"고 말했다. 평화은행이 97년부터 5년 동안 낸 적자 8천3백92억여원을 이 은행의 법통을 잇는 우리신용카드가 세금을 안 내는 데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은행과 제일은행의 합병 방안도 법인세를 절감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제일은행의 누적적자를 잘만 활용하면 합병은행은 1조원 이상의 세금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은행이 합병을 내년으로 미루면 올해 절약할 수 있는 몇천억원의 세금을 고스란히 내야 한다. 시간을 끌수록 손해를 보는 이유다.

제일은행 대주주인 뉴브리지캐피털측은 매각 협상을 할 때부터 이 절세(節稅)효과를 알고 있었으며 하나은행과의 협상에서 이를 값으로 쳐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매각을 추진하는 서울은행도 누적적자의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

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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