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월봉초교 아버지회

중앙일보

입력 2010.06.22 00:24

업데이트 2010.06.22 00:24

지면보기

02면

‘머리로만 생각하고 가슴으로만 느끼는 아빠는 결코 좋은 아빠가 될 수 없다. 지식이 많은 아빠, 용돈을 많이 주는 아빠도 아니다. 사랑의 표현을 자주하고 작은 것이라도 늘 아이와 함께 약속을 실천으로 옮기는 아빠가 이 시대 아이들이 바라는 좋은 아빠의 모습이다.’ 요즘 아버지는 자녀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 여가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아버지의 생활패턴이 가정적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 가정에 소홀히 했다간 아버지의 존재감을 찾을 수 없는 ‘외톨이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글=강태우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학교를 찾는 부모는 어머니’라는 고정관념이 사라지고 있다. 아버지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기존의 ‘치맛바람’ 대신 ‘넥타이바람’이 생겨나고 있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의 바람이다. 일 때문에 어머니보다 자녀 교육에 소홀할 수 밖에 없었던 아버지들이 학교 운영과 자녀교육에 참여하게 되면서 나타나게 된 변화의 바람이다. 학교에서 아버지를 보는 것은 이제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천안의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의 멘토, 선생님, 친구 같은 슈퍼맨을 꿈꾸는 아버지들이 있다. 10여 년간 전통을 이어오며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월봉초등학교 아버지들이다.

제 12대 아버지회 회원들이 교정에 모여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사진 오른쪽이 김주영 회장.) [조영회 기자]
월봉초등학교가 이달 초 인근 롯데마트 천안점과 ‘1교1사’ 결연을 맺었다. 교육여건을 개선하고 교육공동체 조성을 위해서다. 마트는 ‘학교사랑 캠페인’에 동참하기로 했다. 기업이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로 한 것이다. 결연이 성사되기까지는 아버지회의 힘이 컸다. 지난 1999년 쌍용동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월봉초가 개교했다. 같은 시기 롯데마트가 둥지를 틀었다. 월봉초와 롯데마트가 올해로 개교, 개점 12주년을 맞았는데 아버지회가 아이디어를 내 행사를 추진했다.

12대 아버지회 가족들이 딸기 체험 후 단체 사진을 찍었다. [월봉초교 아버지회 제공]
월봉초 개교와 함께 결성된 아버지회도 12대를 맞았다. 모두 34명의 아버지회가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끈끈한 정으로 똘똘 뭉친 열정파들이다. 오랜 기간 활동해온 만큼 천안지역 아버지회 가운데 가장 적극적이다. 운동장에 모래를 깔고 나무도 직접 심고 가꾸는 등 개교 당시부터 이미 남자들만의 저력을 발휘해 왔다. 뿐만 아니다. 생태학습장이나 소각장 방문 등 환경체험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거나 문화공연, 불우이웃돕기 등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해마다 졸업생 20명에게 희망을 주는 장학사업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있다.

아버지회가 기획하는 모든 프로그램은 언제나 아이들과 함께 한다. 지난달에는 아버지와 아이들이 예산의 딸기 농장을 찾아 추억을 만들었다. 이달에는 영화를 보고 식사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자녀와의 소통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참여율이 꽤 높은 편이다. 자녀가 졸업할 때까지 돌아가며 회장과 총무를 맡아야 하기 때문에 책임감과 결속력이 높다. 아버지들은 평소에도 시간이 나면 ‘번개 만남’을 갖기도 한다. 축구나 농구 등 운동 모임으로 정을 나눈다. 퇴근 후 저녁이나 행사를 마친 뒤에는 서로 어울려 소주잔을 기울이며 자녀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아버지들은 아이가 학교를 졸업해도 아버지회 인연을 계속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올라가도 ‘자녀교육’이라는 공통 관심사가 있기 때문이다. 자녀를 통해 만난 이웃 남자들의 끈끈한 의리가 학교 발전은 물론 학교와 지역사회를 이어주는 존재가 됐다.

3년 전 부산에서 이사온 권오창(41) 부회장은 “아버지 모임이 잘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참여하게 됐는데 일상적인 직장 모임과는 분명 다른 변화를 체감했다”며 “가족단위 행사나 학교 운영 참여를 통해 지역공동체의 유대감을 높이는 모습에서 자부심과 보람을 느꼈다”고 뿌듯해 했다.

송영(39) 총무는 “아버지들은 사회성이 뛰어나고 결속력이 강한 반면 경쟁의식이 없어 학교 운영을 둘러싼 잡음이 거의 없다”면서 “사회 각 분야에서 소임을 다하는 아버지들의 모임이 어머니 중심의 학부모회 만큼 활동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제12대 아버지회 김주영 회장

어릴 때 자녀와 만든 추억 평생 간다

아버지회는 어떤 모임인가.

사실 생소하게 들릴 수 있다. 각 학교마다 자모회 혹은 어머니회가 학교공통체 자생단체로 조직돼 있지 아버지회는 흔치 않다. 파악하기로는 천안에 중학교는 거의 없고 초등학교는 몇 몇 학교에 아버지모임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요즘 대세가 아버지의 역할이 강조되는 시대라 앞으로 많은 학교에서 조직될 것이라 생각된다.

아버지회 활동이 적극적이다 비결은.

요즘 아버지들은 우리 세대 아버지와 많이 다르다. 예전 아버지들은 밖에서 경제활동만 신경 썼지 자식의 학교생활은 거의 어머니가 담당했다. 그래서 ‘치맛바람’이란 말이 생겨났다. 하지만 요즘 아버지는 그렇지 않다. 자식교육에 대한 열의와 관심이 대단하다. 자식이 다니는 학교에 가보고 싶고 참석하고 싶지만 남자 혼자 가기가 쉽지 않다. 우리 학교는 아버지회가 개교 때부터 조직되어 많은 아버지들이 자식들의 학교생활이나 학교행사에 참석하기 쉬워졌다. 그래서 아버지회에 가입한 아버지들이 적극적인 것 같다. 다행이도 아버지회의 행사가 야간이나 주말에 이루어져 직장에 다니는 아버지도 눈치 안보며 참석 할 수 있다.

월봉초 아버지회의 장점은.

아버지회 행사나 활동은 대부분 가족이 참여한다. 그래서 자녀들과 같이 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요즘은 자녀수가 많지 않다. 가족 행사나 체험활동을 가더라도 나름대로 재미는 있지만 여럿이 하는 것 보다는 재미가 덜하다. 이런 점에서 아버지회가 마련하는 체험활동이나 행사는 가족끼리 교류와 자녀들도 같은 반 혹은 이웃 친구끼리 할 수 있어서 좋다. 예전에 우리가 친구들과 같이 놀고 하는걸 생각하면 될 것이다. 다른 가족들을 보며 배우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개별적으로 아버지회원끼리 모였을 때는 각기 사회 다른 부분에서 다른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 정보교환과 비즈니스 파트너십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게 아버지회만의 장점이다.

자모회(어머니회)와 무엇이 다른가.

어머니가 자녀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과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확연히 구분이 되어 있다. 마찬가지다. 학교에 자모회는 모든 학교에서 조직되어 있다. 하지만 아버지회는 조직되어 있는 학교는 많지 않다. 서로가 학교에서 역할도 다르다. 하지만 아버지회나 자모회나 학교의 교육공동체 자생단체로 학교에서 자녀들 생활에 도움을 줄려고 하는 목적은 같다고 할 수 있다.

자녀를 둔 아버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자녀가 부모와 많은 시간을 같이해야 올바르게 클 수 있는 게 아니라 부모가 자녀와 함께 많은 시간을 같이해야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 우리 아버지들은 자녀와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어떻게 놀아줘야 하는지 모른다. 시중에 나와 있는 수많은 책을 보더라도 실생활에는 그리 도움이 되지 못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자녀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책에서 배우는 것보다 더 실질적이고 확실한 방법을 조금씩 터득해 나갈 것이다. 그러다 보면 좋은 아버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