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디자이너 등 잘 나가던 IT직종 '아니 벌써~'사양직업 됐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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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웹디자이너 邊모(31·여)씨는 1997년 중견 제조업체에 입사한 뒤 한때 연봉이 두배까지 뛴 정보기술(IT)업계 전문가였다. 스톡옵션을 주겠다는 벤처기업의 스카우트 제의도 여러곳 있었다.

그러나 요즘 그는 웹사이트 한 페이지 제작에 4만원씩 받는 프리랜서다.

"말이 프리랜서지 아르바이트에 가깝지요.일감이 없어졌어요. 자고 일어나니 사양직종이 돼버린 겁니다."

벤처기업 디지틀펄스의 서영걸(36)사장은 "2년 전만 해도 전문기술이던 웹디자인·프로그램 작업이 요즘은 컴퓨터만 다룰 줄 알면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누구나 할 수 있게 됐다"고 그 이유를 말한다. "그래서 전문인력도 필요없게 됐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모 여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金모(26)씨는 워드프로세서 1급·인터넷 정보검색사 2급 등 여러 자격증을 땄지만 번번이 취업에 실패했다.

취업전문 사이트인 헬로잡 조덕수씨는 "기업 인사담당자들도 이제는 이런 자격증을 종이조각에 불과하다는 의미로 '페이퍼 자격증'이라 부른다"고 말했다.

IT 관련 직업의 수명이 짧아지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부 전문가들이 독점했던 기술들이 급속히 대중화하면서 전문분야라는 울타리가 무너진 것이다. 정보기술 발달 속도가 워낙 빨라 여차하면 순식간에 옛 기술이 돼버리는 것도 한 이유다.

지난해 말 한국통신 경력사원 공채 때 웹 디자이너 한명을 뽑는데 무려 6백95명이 몰린 사실이 이런 현상을 잘 보여준다.

업계에선 PC통신 보급 초기의 게시판(BBS)관리자·워드프로세서 입력사·문자삐삐 입력사 등도 사양직종으로 꼽는다.

문자삐삐 입력사의 경우 99년까지 나래·서울이동통신에서 수십명씩 고용했었으나 최근에는 사실상 사라졌다. 서울이동통신 고객서비스를 대행하는 큐앤에스 이운석 과장은 "당시 일하던 입력사들 대부분이 휴대전화·홈쇼핑업체 등의 텔레마케터로 직업을 바꿨다"고 전했다.

회사도 변신하기는 마찬가지다.무선호출기 업체 나래이동통신은 2000년 7월 무선호출기 사업면허를 반납했다. 97년 2백70만명에 달했던 무선호출기 가입자가 휴대전화 보급으로 10만명으로 줄면서다. 회사 이름도 나래앤컴퍼니로 바꿔 투자 및 인터넷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 김성식 위원은 "기술 진보가 빨라 직종·업종의 부침이 심한 만큼 일시적 인기나 유행을 따르는 기술 취득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승녕·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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