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노인·장애인들 목욕시켜 드려요 : 공무원 김후봉·이재춘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9일 오전 10시 서울시 중구 신당동 김영균(64)씨의 14평 임대아파트 안방.

6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져 거동은커녕 말도 제대로 못하는 그가 길이 1m50㎝·10㎏짜리 이동식 욕조를 든 채 땀을 흘리며 들어오는 50대 남자 두명에게 눈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날마다 목욕시키는 남자들'인 서울 중구보건소 기능직 공무원 김후봉(50·서울 구로구 구로동)·이재춘(52·경기도 안산시 와동)씨. 김씨 등은 매일 오전 9시30분부터 독거 노인이나 중증 장애인 두세명을 찾아가 목욕을 시켜준다.

이날도 이들은 물탱크·보일러·이동식 욕조 등이 설치된 이동식 목욕차량을 몰고와 두시간 동안 김씨를 이발·면도·목욕시켰다.

이들은 1998년 1월 순환 근무로 중구보건소로 발령받으면서 목욕 도우미로 나섰다. 당시 LG재단이 보건소에 이동식 목욕차량을 기증했다.

처음엔 여성 자원봉사자들을 도와 무거운 욕조를 옮기는 보조 역할이었다. 그러나 거동도 못한 채 누워만 있는 노인들을 보며 부모님 생각에 연민이 생겼고, 여성 봉사자를 거부하는 할아버지들을 직접 씻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99년 11월 다른 부서로 순환 발령을 받아 목욕 서비스를 잠시 중단했다. 그러나 일부 새 담당자들은 "냄새 난다""힘들다""역겹다"며 목욕시키는 일을 꺼렸다.

노인들 역시 "예전 사람들이 우리를 편하게 잘 대해줬다"며 "김씨와 이씨를 돌려달라"고 보건소에 간청해 결국 2000년 4월 다시 이 업무로 돌아왔다. 이들은 현재 독거 노인 등 46명의 목욕을 돕고 있다.

김씨는 "5년 동안 뇌졸중으로 누워 계시다 10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며 "병상에 계신 아버지 목욕 한번 못시켜 드리고 일년에 한두번 병문안 갔을 때 방에서 냄새가 나 코를 막고 나왔던 게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박현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