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가 펄펄 뛰는 가요 지킴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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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지난 8일 오후 2시 수원 아주대 체육관. TV의 대표적인 음악 전문 프로그램인 MBC '수요 예술무대'의 녹화 리허설이 시작됐다. 무대에 오를 가수들이 차례로 미리 연습하는 리허설은 대개 녹화 서너 시간 전부터 진행된다.

'수요 예술무대'는 방송국의 스튜디오가 아니라 외부 공연장을 옮겨다니며 녹화한다. 한 장소에서 두 회분을 처리하는 게 보통으로, 이날은 10일 저녁 방영될 4백10회분과 그 다음주에 나갈 4백11회분을 끝냈다. 방청객들이 참가한 가운데 막이 오른 건 오후 5시 30분이었다.

라이브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하는 '수요 예술무대'는 시청률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한국 지상파 TV 환경에서 상대적으로 저조한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색깔을 무기로 4백회를 넘기며 장수하고 있다. 김광민·이현우 두 진행자의 역할도 크지만 역시 이 프로그램의 지주는 한봉근 PD다.

9년째 이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한PD는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했다. '수요예술무대'가 좋은 프로그램으로 평가받으며 장수하고 있는 것은 질 위주의 프로그램 제작을 포기하지 않는 그의 고집 덕분이다.

평소에도 음악성 위주의 국내외 뮤지션들이 등장하는 '수요 예술무대'지만 이날 녹화장에는 특히 국내의 실력파 뮤지션들이 대거 출동했다. 봄여름가을겨울·김현철·롤러코스터·조PD·신효범…. 그리고 윤상. 다음주에 네번째 정규 앨범 '이사'를 발표하고 5월 18일에는 탤런트 심혜진(영화배우 심혜진과 동명이인)과 '드디어'결혼하는 이 노총각 뮤지션과 한봉근 PD가 녹화 준비로 분주한 현장에서 음악과 결혼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윤상(윤)='수요예술무대' 4백회 돌파를 정말 축하드립니다. 참 대단하세요.

한봉근 PD(한)=아이고 고맙습니다. 엊그제 시작한 것 같은데 벌써 4백회가 넘었네요. 4천회까지 가야 할텐데. 하하. 윤상씨는 '수요예술무대'출연이 이번이 다섯번째인가 여섯번째인가 그렇죠?

윤=그런 걸 다 기억하시네요. 정확히 여섯번째예요.

한=이렇게 인터뷰를 하니까 불만을 말해야지.(웃음) 평소에도 자주 나와주세요. 가만 생각해보니까 음반이 나올 때 쯤에 주로 출연한 혐의가 있어요.(웃음)

윤=죄송합니다. 보여드릴 게 많아야 자주 나올텐데. 하하. 출연은 자주 못했지만 누구보다 열렬한 시청자인 건 분명해요. 1회부터 봤거든요.

한=정말인가요? 1992년에 첫 회를 방송했지요. 그때는 여의도 MBC 사옥의 스튜디오에서도 가장 작은 E스튜디오에서 진행했어요. 그 'PD수첩'진행하는 스튜디오 있잖아요. 그러다 안되겠다 싶어서 외부 공연장으로 나온 거죠.

윤=사실 전 '수요예술무대'가 방영되는 걸 보고 지상파 TV와 한국 대중음악계에 혁명적인 변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야, 이제 판이 완전히 바뀌는 거 아니야, 그렇게요. 그러니까 라이브 위주의 방송과 음악이 정착되는 기폭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거죠.

한=어, 그렇게 못돼서 미안한데요. 하하.

윤=아직 4백회밖에 안됐잖아요.(웃음) 하지만 '수요 예술무대'가 많은 걸 이룬 게 사실입니다. 국내외 뮤지션이 출연해 라이브로 제 기량을 충분히 펼쳐보일 수 있는 TV 프로그램은 '수요예술무대'를 빼면 전무하다시피 한 게 사실이니까요. '음악'을 무기로 하는 뮤지션들에게는 중요한 안식처인 셈이죠.

한=고맙습니다. 뮤지션들과 시청자들의 그런 격려가 제작팀의 가장 큰 무기죠. 개편의 계절이 올 때마다 "설마 '수요예술무대'없애는 거 아니죠?"라는 엄포성 문의가 방송국에 빗발치는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남았다고 할까요? (웃음) 윤상씨는 이번 앨범이 '겨우'4집이네요.

윤=글쎄말입니다. 다른 가수들에게 노래를 주고 프로듀싱에 참여하고 그러다 보니 정작 제 앨범은 많이 만들지 못했어요. 이제는 제가 정말 만들고 싶은 노래에만 힘을 모아야겠다, 뭐, 그런 생각을 합니다. 4집은 그 출발점인 셈이고요.

한=타이틀곡 제목이기도 한 앨범 제목이 특이하네요.

윤=제 노래에 줄곧 가사를 써온 박창학씨가 이번 노래 가사도 만들었어요. 그 분 특기가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쓰는 건데요, 결혼을 하면서 제 삶의 장면이 바뀌는 걸 가사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까요.

한=아, 그러니까 윤상씨가 곧 맞이할 인생의 이사를 노래한 거네요.

윤=맞습니다.(웃음) 인생과 음악의 선배로서 조언 좀 해주세요.

한=먼저 무릎 꿇고 싹싹 비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세요.(웃음) 아내와 함께 아이들을 낳고 키우는 재미를 맛보는 게 인생의 어떤 재미보다 크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결혼과 함께 한층 성숙한 음악을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윤=음악적 자존심을 지키는 뮤지션으로 남기 위해 노력할게요. 오랜 시간 후에도 '수요예술무대'가 계속되고 저도 그 자리에 설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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