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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애니] '하울의 움직이는 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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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여러 모로 매력적이다. 차가운 컴퓨터 그래픽보다 따뜻한 '사람의 손'으로 만든 만큼 인간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수채화처럼 그림이 상쾌한 반면 삶의 어두운 구석을 탐색하는 시선은 묵직하다. 애니메이션의 달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저력이 살아 있다.

가장 큰 '무기'은 대조법이다. 젊음과 노년, 전쟁과 평화, 마법과 일상, 외모와 마음 등의 대립 항목이 멋지게 하나로 융합하면서 세대.지역의 간극을 뛰어넘는 판타지를 빚어냈다. 모자 가게에서 일하는 18세 소녀 소피가 갑자기 마법에 걸려 90세 노파로 바뀌고, 젊고 훤칠한 마법사 청년 하울과 사랑에 빠지면서 세상도 평화를 되찾는다는 얘기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렇게 창작한다!'를 지은 평론가 황의웅씨는 "미야자키의 최고작은 아니더라도 상업성만큼은 최고일 것 같다"며 "섬세한 인물 묘사, 마법과 SF의 결합이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언뜻 보면 순정만화 같다. 미야자키 작품 가운데 처음으로 키스 장면이 등장하고, 가난한 소녀를 구원하는 '백마 탄 왕자님' 구조가 뼈대를 이룬다. 하울은 동화 속 왕자를 뺨치는 꽃미남. 하지만 소녀(정확히는 노파)는 철부지 하울이 성숙한 인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소피는 현명한 노년을 상징한다. 관절에선 우두둑 소리가 나고,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파였으나 '성급한 젊음'은 알기 어려운 삶의 경륜을 보여준다. 외모에 민감하지만 전쟁을 끝내려는 정의파 하울, '움직이는 성'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수다쟁이 불꽃악마 캘시퍼, 어른처럼 행동하는 꼬마 마르클 등 캐릭터 하나하나가 정겹다.

온갖 동물 형상에 고철 더미를 합쳐놓은 '움직이는 성'도 독특한 볼거리. 영국 작가 다이애나 윈 존스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23일 개봉. 전체 관람가.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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