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천하' 김재형 PD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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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SBS 사극 '여인천하'의 김재형(金在衡·67)PD. 까무잡잡한 피부색에 부리부리한 호목(虎目), 보통 사람보다 세 배는 더 큰 성량. 그가 끊임없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증기 기관차를 연상케 한다. 촬영장에서 그가 출연자들을 몰아치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엔 나름대로 관록을 자랑하는 탤런트들도 주눅이 들게 마련이다. 강수연도, 이덕화도, 전인화도 쩔쩔맬 수밖에 없다.

그런 그에게 20년 넘게 따라 다닌 별명이 있다. 바로 '깜국장'이다. 유난히 까만 얼굴 때문에 붙여졌다. 깜씨·니그로·깜둥이 등 비슷한 말까지 포함하면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검은색과 관련된 별칭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국장급 PD였던 1980년대 초 어느날 그는 방송사 사장에게서 긴급 호출을 받았다. 사장실에는 쌍화탕 한 바가지가 있었다. 의아해 하는 그에게 사장은 "능력은 탁월한데 건강이 안 좋으니, 원. 좀 쉬면 어떻겠나"라며 대접을 들이 밀었다. 누군가 그의 검은 얼굴을 빗대 술 때문에 간에 무리가 갔다고 음해한 것이었다. 그는 "술은 입에도 못 댄다"며 가족들의 얼굴이 모두 검다고 설명한 뒤에야 그 자리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 일화가 알려지면서 방송가 사람들은 그를 '깜국장'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도 이 별명을 좋아한다.

"옛말에 장부의 얼굴은 찐 대춧빛과 같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검붉은 얼굴은 사나이의 상징 아닌가요?" 하지만 이 '만년 청년'도 끝내 비밀 한가지를 털어놓고 말았다.

"나 속살은 어느 여편네보다 하얗다우…." 장난기어린 웃음이 입가에 번졌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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