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전전긍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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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에 자제를 당부하는 한편 각국 정상들에 전화를 걸어 긴급 대책을 협의했다.

지난달 30일 부활절 휴가를 맞아 텍사스 크로퍼드 목장에서 망중한을 즐기다 중동사태에 접한 부시 대통령은 서둘러 콜린 파월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안보보좌관 등과 전화 회의를 가졌다. 또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유럽연합(EU) 순번제 의장인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스페인 총리, 압둘라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등과 잇따라 전화 통화를 갖고 사태를 논의했다. 그는 크로퍼드 목장 기자회견에서 평소와 달리 농담을 건네지 않았으며 웃음을 아끼는 등 고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미국이 양측 모두에 자제를 촉구하는 지금의 수준으로는 결코 평화 중재가 성공을 거둘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두 차례나 앤서니 지니 특사를 현지에 보내 중재를 벌였고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에 대규모 공격을 가한 지난달 초 세번째로 그를 파견해 중재를 재개했다. 그러나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하다 2주 만에 이스라엘의 대대적 공세를 방관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30일 팔레스타인의 테러를 비난하면서도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인정하는 것 이상의 아무런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팔레스타인은 미국의 중재 테이블에서 독립국가 수립을 보장받아야만 휴전에 동의할 수 있다는 입장인 데 반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적대행위 중지를 중재의 최종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지니 특사는 "휴전에 동의하면 이스라엘과 독립을 논의하는 자리를 바로 마련해달라"는 팔레스타인의 요청에 "내 권한 밖이다"는 말만 거듭하는 등 부시 행정부로부터 양측 입장을 실질적으로 조율할 재량권을 부여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에 대한 확실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등 양측의 동상이몽을 좁힐 정치적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설사 휴전이 성립되더라도 금방 깨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워싱턴=이효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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