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대회는 해프닝 잔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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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제1회 월드컵 대회 때는 경기규칙과 장비규격 등이 제대로 정해지지 않아 웃지 못할 해프닝이 많이 빚어졌다.

1930년 7월 30일 우루과이의 센터나리오 경기장에서 벌어진 주최국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의 결승전. 10만여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양국은 경기 전부터 어느 나라에서 만든 공을 사용할 것인가를 놓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당시엔 나라별로 축구공의 규격이 제각각이어서 어떤 공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엇갈리기도 했다. 그래서 경기 도중 골키퍼가 슬그머니 자기 나라에서 만든 공으로 바꾸기도 했고 관중이 공을 찢어버리는 일도 있었다.

결국 양국은 결승전 전반전엔 아르헨티나산 공을, 후반전엔 우루과이산 공을 쓰기로 결정했다. 전반전은 아르헨티나가 2대1로 앞섰다. 그러나 우루과이는 후반전 들어 익숙한 공을 차게 돼서인지 잇따라 세골을 터뜨려 4대2로 역전승을 거두고 줄리메 컵을 품에 안았다.

우루과이 정부는 다음날을 국민 축제일로 선포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에서는 수천명이 우루과이 영사관에 난입해 난동을 부렸다. 그래서 양국의 외교관계가 한때 단절되기도 했다.1회 대회 때는 선수 교체에 관한 규정이 따로 없어 선수가 큰 부상을 당하더라도 다른 선수를 대신 뛰게 할 수가 없었다. 프랑스와 멕시코의 개막전이 대표적인 예다.

경기 시작 10분 만에 프랑스의 골키퍼가 멕시코 선수의 발에 차여 턱뼈가 으스러지는 부상을 당하고 실려 나갔지만 선수 교체가 불가능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수비수 한명을 빼 골키퍼를 맡기고 10명으로 경기를 하면서도 4-0으로 승리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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