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협상론자 김무성의 정치실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민주당과의 관계도 자신 있어 했다. 그는 “얼마 전 박지원 원내대표가 교섭단체대표 연설을 하기 앞서 찾아가 직접 넥타이를 고쳐 매주며 잘 하시라고 했다”고 소개했다.

당 안팎에서 그의 정치 실험이 시작됐다.

그는 항상 참모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서 정치를 배웠고,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참여했다. 이어 친박 진영의 좌장을 맡았다. 이젠 그에게 보스가 없다. 김무성 정치를 해야 할 때다. 그는 지금 중립지대에 서 있다. 역할이 커졌다. 지난달 원내대표가 됐다. 지방선거 패배로 정몽준 대표가 물러나 당 비상대책위원장도 맡았다.

일단 출발은 나쁘지 않다. 여야 상임위원장 배분은 매끄럽게 처리했다. 비상대책위원 인선과 재·보선 공천심사위 구성도 순조로웠다. 청와대 의중이라던 이병석 사무총장 카드를 유보시키는 강단도 보였다. 난항이 예상됐던 세종시 국회 처리도 야당과 합의를 끌어냈다.

그는 협상론자다. 정치권에 협상이란 말이 실종된 지 꽤 됐다. 17대 국회에서 열린우리당이 ‘4대 개혁 입법’을 주도하던 무렵부터 여야는 극한 싸움을 벌일 때가 많았다. 18대 국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요즘 여의도에선 여야의 협상 정치가 복원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나온다. “정치는 협상이자 절충”이란 건 그의 소신이다. 협상과 절충은 대중적 리더보다 관리형 리더들이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의 협상론이 당내에서 주효한 건 당이 친박·친이에 쇄신파까지 가세해 교착 상태에 빠져 있어서다.

그에게 기대되는 역할이 또 있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사이에서 온기를 만들어내는 거다. 그 역시 그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이도 많지 않다. 여권의 모든 갈등은 두 사람의 불화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은가. 여권의 분열은 그들이 기대하는 재집권의 소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모르지 않을 터다.

그는 세종시 문제를 놓고 박 전 대표와 의견이 갈리면서 친박 울타리에서 나왔다. ‘보스’가 원안을 고수할 때 소신을 내세워 반대했다. 중립지대에서 시작하는 정치 실험은 단지 그의 정치 생명만 달린 게 아니다. 화합 부재 시대의 한국 정치를 바꿔놓을 수도 있다.

신용호 중앙SUNDAY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