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부총재 일괄사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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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최병렬(崔秉烈)·양정규(梁正圭)부총재 등 8명의 한나라당 부총재가 25일 총재단회의에서 일괄 사퇴한다. 이회창(李會昌)총재에게 당 내분 수습을 위한 선택의 폭을 넓혀준다는 뜻에서다.

한나라당은 어차피 다음달 중순이면 신임 부총재 선출을 위한 경선 레이스를 시작한다. 게다가 부총재였던 박근혜(朴槿惠)의원 탈당에 이어 강삼재(姜三載)·이부영(李富榮)·하순봉(河舜鳳)부총재가 잇따라 물러나 당내에선 "힘이 실리지 않은 기구를 계속 유지해야 하느냐"는 회의론마저 나온다.

하지만 부총재 일괄 사퇴는 "내분 수습의 첫 단추"(南景弼대변인)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李총재측은 梁부총재의 2선 퇴진으로 '측근정리' 목소리는 잦아들 것이라고 기대한다. 梁부총재는 河부총재와 함께 소장 개혁파 의원들로부터 '측근 실세'로 지목돼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30~40대 지구당위원장 모임인 미래연대는 25일 시작하려던 '측근 퇴진' 서명작업을 연기했다. 미래연대 오세훈(吳世勳)공동대표는 "며칠 더 논의할 것"이라면서도 "서명은 우리가 소수라는 점만 드러나게 할 것"이라며 부정적이다.

李총재는 이를 계기로 국면을 전환하려 한다. 27일께 대선후보 경선 출마선언으로 당 분위기를 일시에 경선국면으로 몰고 가겠다는 생각이다. 자신은 당무 1선에서 물러나 당을 총재권한대행 체제로 운영하며, 경선 캠프도 꾸릴 생각이다. 총재권한대행에는 부총재 경선에 출마하지 않는 현경대(玄敬大)전당대회의장이나 박관용(朴寬用) 전 선준위 위원장이 유력하다.

하순봉 부총재와 김기배(金杞培) 전 총장 등 측근 의원들에겐 부총재 경선 불출마도 권유 중이라고 한다. 더 이상의 시빗거리를 없애겠다는 각오다.

하지만 미래연대는 이날 연 6일째 회의를 열어 집단지도체제 도입, 민정계 중심의 주류측 의원들에 대한 광범위한 인적 청산 등을 李총재에게 요구했다. 김덕룡·홍사덕 의원의 '탈당 가능성'도 李총재에겐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고민거리다.

이와 관련, 총재실 관계자는 "李총재가 5월 전당대회 총재경선 불출마 등 좀더 과감한 쇄신책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한마디로 백지상태에서 당의 위기극복 방안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李총재가 선택할 수단은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다. 김용갑(金容甲)의원 등 당내 보수파 의원들은 "지난 18일 李총재가 기자회견에서 밝힌 총재권한대행 체제 이상의 새로운 수습안은 혼란만 가중한다"며 반대했다. 이들은 26일 모임을 갖는다. 민정계 한 중진의원은 "미래연대가 서명하면 우리도 소리없는 다수의 실력을 보여주겠다"고 경고했다.

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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