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 부작용 고개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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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저금리가 계속되면서 지난해 가계 빚이 75조원 늘어나고 부동산값 급등, 신용불량자 양산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반면 기업 설비투자는 감소하고 기업 구조조정도 시들해지고 있다.

저금리 정책이 소비를 늘려 내수를 진작시키는 효과는 거두었지만 이로 인한 부작용이 커지고, 기업의 투자·생산·수출 활성화라는 목표는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와 한국은행은 금융기관의 가계대출 자제를 촉구하면서 저금리 정책을 손댈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관계기사 5면>

한국은행은 22일 지난해 말 우리나라의 가구당 빚이 2천3백30만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2000년 말의 1천8백50만원에서 한 해 동안 4백80만원(25.9%) 늘었다. 같은 기간 서울의 아파트값은 16.2% 올랐다. 지난해 주가도 37.4% 뛰었다. 2000년 초에 연 10%대였던 가계대출 금리가 지난해 말 연 7.3%로 낮아지는 등 저금리가 계속된 데 따른 영향이다.

지난해 말 현재 가계부채는 2000년 말보다 28%(74조7천억원) 증가한 3백41조7천억원.1년 동안 가계대출이 62조4천억원, 신용카드를 이용한 외상 매입 등이 12조3천억원 늘었다. 올들어서도 은행 빚은 1~2월 두달 동안 9조7천억원 증가했다. 가구당 금융자산이 지난해 6천만원 수준으로 추정돼 아직 가계파산까지 걱정할 단계는 아니지만 금리가 오르면 큰 부담이 될 것으로 우려된다.

한은은 은행 대출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가구당 연간 22만6천원의 이자를 더 내야 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미 신용불량자가 양산되는 상황에서 금리가 오르면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하는 사례가 속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금융기관들이 가계대출에만 열중하면서 기업에는 돈이 제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다. 금융기관 대출 중 가계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말 54.8%로 사상 처음으로 기업대출보다 높아졌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전년 대비 9.8% 줄었다. 금리가 낮아 기업들이 이자를 덜 내게 되자 구조조정도 소홀해지고 있다. 한은은 이날 "경제 여건이 악화하면 늘어난 가계 빚이 소비 위축을 불러와 경기 침체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 금융계는 한은이 이르면 다음달, 늦어도 7월 이전에 모든 금리의 기준이 되는 콜금리를 올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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