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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선 안가르쳐주는 '진짜노래' 가요는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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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가수 김연자(43)씨가 다음달 북한을 방문해 공연한다. 지난해 4월 이미 한국 대중가수로는 처음 북한에서 단독공연을 한 그다. 왜 김연자씨일까. '지도자 동지'가 "패티김·이미자·미소라(일본 여가수)의 노래를 합친 것 같다"는 극찬(본지 3월 6일자 14면)을 아끼지 않을 정도로 그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 김씨는 소위 왜색(倭色)으로 불리는 트로트와 엔카(演歌)를 구사하는 가수다. 주체와 자주를 금과옥조로 내세우는 나라의 최고 지도자와 트로트 가수 김연자씨의 조합은 어딘지 부조화스럽지 않은가.

이영미(41·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씨가 지은 이 책은 이를테면 이런 의문에 대해 잘근잘근 설명해준다. 김씨와 '지도자 동지'의 관계에 대한 설명은 물론 책에 없지만, 남북한을 막론하고 한민족의 의식·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트로트의 무게를 설득력 있는 근거를 대가며 설명하는데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소프라노 윤심덕은 음치

이 책은 일제 강점기부터 지금까지의 한국 대중음악사를 일습한 '가요통사(歌謠通史)'라고 부를 만하다. 아니 가요통사를 넘어 가요를 즐겨온 대중들의 사회심리사까지 짚어내는 생활사·미시사 분야의 저술이라고 해도 좋을 듯 싶다. 자칭 가요 매니어인 저자는 "재즈나 록은 돈을 지불해서 공부할 만한 대상이라고 생각하는데 한국 대중가요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상당수 '먹물스런' 대중음악 애호가들에게 내미는 반론의 증거로 3백60여쪽에 이르는 책을 펴냈다.

대개 인기있는 문화평론은 읽은 이들로 하여금 "그래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라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지 무슨 독창적인 이론이나 해석을 내세운 게 아니다. 4년 전 저자가 펴낸 학술적 성격의 저술 『한국대중가요사』(시공사)에 비해 더욱 노련해진 이야기꾼의 역량을 과시하는 이 책 역시 그런 공감의 재미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당대의 정서 고스란히

군가풍의 가요를 예로 들어보자. 피로 맺어진 전우로 상징되는 처연함-전쟁의 긴장이 떨어진 데서 오는 과장된 정서-전쟁을 겪지 않은 '당나라 군대'같은 모습-입대를 둘러싼 애상으로 변해온 것은 결국 시대상의 반영이라는 해설을 구체적인 노래 가사를 대며 풀어가는 데서는 수긍을 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재미있는데 다만 한가지 전제가 있다.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노래들을 어렴풋이라도 기억하는 세대에 한해 그렇다는 점이다. (주로 한국전쟁 이후의 노래들을 분석 대상으로 하는 만큼 최대한 넓게 잡아 대략 30대 중반 이상의 독자들이 해당하리라.) 그래야 장세정의 1952년 노래 '샌프란시스코'에 나오는 "비너스 동상을 얼싸안고/소근대는 별 그림자"라는 가사가 얼마나 웃기는 것이며 왜 그런 우스꽝스런 노래가 그 당시엔 태연히 불려졌는지에 대한 설명을 공감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은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은 음치였다'는 주장,'가요 가사 속에는 어떤 나무가 가장 많을까' 혹은 '왜 박정희는 '동백아가씨'를 금지곡으로 만들었나'같은 흥미있는 소재를 툭툭 던져가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런 재미 속에 '더이상 신파적 비극성이 통용되지 않는 사회상 때문에 트로트는 이제 수명을 다했다'는 등의 분석적 주장을 담음으로써 지루함을 피하면서도 깊이의 차원을 역시 잃지 않고 있다.

아쉬움도 많다. 국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서문에서 그가 주로 가사 중심으로 대중가요를 분석하는 이유와 그 타당성을 설명하고 있는데, "'노래=음악'이라는 사람들 머리 속의 등식은 잘못"이라는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다. 가사 중심의 대중음악 분석은 많은 경우 상당한 한계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음악성 측면에서 80년대와 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을 명실상부하게 대표하는 그룹 들국화와 봄여름가을겨울의 등장 배경이나 의의에 대한 설명은 전무하고, 단지 들국화가 '해이지지'(행진), '아뿌로'(앞으로)라는 발음으로 노래했고, 또 봄여름가을겨울이 '입에 왕사탕을 두어개 문 것 같은 발음'을 한다고 폄하한 것으로 끝낸 것은 아쉬움을 넘어 놀랍기까지 하다.

가사 위주 분석 아쉬움

분석의 농도가 90년대 음악에 접어들면서 급격히 묽어지는 것도 그런 한계와 무관하지 않다. 시종 '이식 문화에 익숙한 한국 (대중가요)문화'에 대한 비판을 되풀이하는 저자가 그런 혐의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서태지에 대해서는 전혀 비판하지 않은 (혹은 못하는)점이 대표적인 보기다.

서태지는 옹호하면서 반대로 '정이 가지 않는' H.O.T.에는 비판적인 자세를 견지하는데, 이는 "대중이 자발적으로 좋아하는 노래에는 대중이 생각하고 느끼고 좋아하는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에 대중가요를 분석한다"고 밝힌 글쓰기의 기본 전제에도 어긋난다. 애정을 가지고 이 시대의 음악과 대중을 이야기하려 한다면 H.O.T.의 앨범을 7백만장 넘게 사들인 대중의 의식을 분석하고 설명하려 노력할 일이지 비판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중의 자발적인 음악 향유라는 측면에서 결코 간단히 다룰 수 없는 인디 계열에 대한 분석이 표피적인 점도 같은 맥락에서 지적해야겠다.

수많은 노래와 가수가 등장하는 이 책에 찾아보기가 수록돼 있지 않은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있을 수 있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한국 가요 분석의 텍스트로서 갖는 적지 않은 의미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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